싱가포르, 강제로 떠밀려 독립한 강소국
상태바
싱가포르, 강제로 떠밀려 독립한 강소국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11 19:3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레이지아와 인종, 종교, 부의 정도에서 마찰…리콴유가 강소국 일궈

 

1965년 8월 9일 정오 리콴유(李光耀)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는 연설을 20분간이나 중단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축출된 외로운 싱가포르 섬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앞이 캄캄했기 때문이다.

이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했다. 말이 독립이지, 사실상 연방에서 축출당한 셈이다. 합의 이혼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대해 식민지 통치를 했던 왕년의 종주국 영국도 당황했다. 독립운동이나, 투쟁, 그런 것도 없었다. 오히려 말레이시아 연방이 나가 살라고 떠밀려 독립한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오는 6월 12일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3년전인 2015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당시 대만 총통의 역사적 첫 정상회담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는 한국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다. 그러면 도시국가이자 섬나라인 싱가포르에 대해 알아보자.

 

▲ 싱가포르 위치 /위키피디아

 

코트라 국가정보에 따르면, 싱가포르(Sigapore)는 면적이 약 712.4㎢로, 서울시보다 조금 넓고(1.18배), 인구는 531만명으로 서울의 절반쯤 되는 도시국가다. 공식 명칭은 싱가포르 공화국(Republic of Singapore)이며, 인구는 중국계 74.2%, 말레이계 13.3%, 인도계 9.2%, 기타 3.3%로 구성되어 있다.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 4개 언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서기 2세기경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사바나(Sabana)라는 이름으로 확인되었고, 3세기경 중국 기록에 포라중(蒲羅中)이란 이름으로 언급되었다.

13세기 현재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의 왕이 근처를 표류하다가 상륙해 사자를 목격한 후 싱가푸라(Singapura: 사자의 도시)라 명명한 것이 지금 국명의 유래다. 1365년 자바인의 문헌에 싱가포르를 Temasek(바다 도시)으로 기록한 것이 나타나며 14세기 후반부터 Singapura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14세기에 몽골(元)이 인도네시아를 침공할 때 이곳을 지나갔으리라 추정된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영국이 싱가포르를 확보한 것은 동인도 회사의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Sir Thomas Stamford Raffles)이 1818년 이 섬에 상륙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싱가포르 섬을 집어삼키고 자유무역항으로 선언했다. 이어 영국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태평양 전쟁 시기인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 의해 점령당했지만 일본의 패전으로 1946년에 다시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 /위키피디아

 

싱가포르는 1959년 영연방내 자치령으로 전환되면서 리콴유가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섬은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물과 자원 부족이었다. 리콴유의 구상은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해 하나의 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1963년 8월 31일 싱가포르는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곧이어 9월 16일 말레이, 싱가포르, 사라와크, 사바로 구성된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한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연방과 싱가포르는 화학적으로 결합하기 어려웠다. 연방은 말레이 족이 다수였고, 상가포르는 중국 화교가 70%를 넘었다. 싱가포르의 주종교는 유교였지만,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이었다. 말레이어를 못하는 중국 화교들이 많았다. 가장 큰 격차는 부의 정도였다. 연방내에 소수의 중국인계는 상류층을 형성했지만, 다수인 말레이계는 가난했다.

결국은 인종 대결로 나타났다. 중국인들은 돼지고기를 좋아하지만, 말레이인들은 이슬람이어서 돼지고기에 혐오감을 느꼈다. 중국계의 입장에서는 돈을 벌어 말레이인들을 위해 세금을 내는 것이 싫었다. 드디어 말레이인 민족주의자들은 인종폭동을 일으켜 서로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말레이시아 연방 초대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과 싱가포르주 총리인 리콴유는 절친한 친구이자 독립 동지였다. 하지만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갈등이 심해지고, 인종대립이 격화하자 둘 사이도 멀어졌다. 라만의 입장에선 리콴유가 주의 정치에 국한되지 않고 연방으로 정치력을 확대하는 게 싫었다. 리콴유를 제거하는 모의도 있었지만, 결국 둘은 합의이혼하기로 했다. 리콴유는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는 게 싫었지만, 원치 않는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 싱가포르 금융중심가 /위키피디아

 

리콴유는 독립한 1959년부터 1990년 31년간 총리로 재임하고 2011년까지 후선에서 나랏일을 도와주면서 싱가포르의 기초를 확고히 다졌다. 리콴유 취임 당시에 400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금 5만6,000달러를 넘어섰고,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물류및 금융 비지니스의 중심지로 부상해, 강소국의 표본이 되었다.

싱가포르는 북한의 주요 대외경제활동의 무대다. 북한은 1975년 싱가포르와 정식 수교를 맺고, 북한 대사관을 두고 있다. 북한이 투자한 호텔이 있고, 상당한 자금도 싱가포르 은행에 예치돼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가 김정은에게도 미북 정상회담 장소로 평안한 장소가 될 것이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병옥 2018-05-11 22:13:30
한주에편입되사길원한이총리 세계가이총리같으면 얼마나 좋겠나 한국가에 500주
일본의삿포르부터 1번째주 경상도주는11번째주 서울은 16주평양은20번째주
싱칼포루는180번째주쯤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