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금단현상에 다시 외환위기 직면한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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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금단현상에 다시 외환위기 직면한 아르헨티나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0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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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초고금리의 시험대…외국인 자금 탈주에 1주일새 금리 3차례 인상

 

아르헨티나는 우리나라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다. 그 나라는 지난 50년 동안 숱하게 금융위기를 겪었다. 가깝게는 2001년 현지 통화인 페소화 폭락사태를 겪었다.

이 나라에 다시 외환위기 조짐이 일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바람에 페소화가 폭락하고, 중앙은행은 1주일 사이에 3번이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27.25%에서 40%로, 무려 12.75% 포인트나 폭등했다.

중앙은행이 외국 자금을 붙잡기 위해 금리 40%를 제시하는 것은 현대사에 전례가 드믄 조치다. 중앙은행의 극약처방으로 통화가치가 안정될지는 미지수다. 이 조치가 성공하면 일단 외환시장의 붕괴를 막을수 있지만, 만약 실패하면 외환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 /그래픽=김현민

 

2015년말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우파 진영의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후보가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오랫동안 노동자와 서민층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 영합주의 경제정책(페론주의)에 젖어있었다. 마크리에 앞서 12년간 번갈아 집권한 페르난데스 부부 대통령의 페론주의 정당은 미국 달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자본통제(capital contron) 조치를 취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전기를 무료로 공급했다. 경제는 엉망이 되었다.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물가는 폭등했다.

마크리는 당선된후 페론주의의 포퓰리즘을 단절하고 경제 체질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외환규제를 풀고 관세율을 낮추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했다. 덕분에 가라앉던 아르헨티나 경제는 플러스 영역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고통은 심했다. 전기와 에너지 산업에 주는 국가보조금을 감축하다 보니 에너지 가격이 두배 가량 뛰었고, 재정을 줄이니 복지혜택이 줄었다. 포퓰리즘에 젖어있던 아르헨티나인들에게 금단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권 2년 되는 지난해말부터 마크리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개혁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재정적자를 줄이면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고, 물가를 잡기 위해 돈줄을 죄면 빚에 쩌들어 있는 가난한 대중이 고통스러워진다.

“양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경제개혁에 딱들어 맞는 말이다. 경제개혁은 아르헨티나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었지만, 국민들의 불만을 키우고, 개혁을 추진한 정치인의 입지는 좁아들게 했다.

지난 1월 마크리 정부와 중앙은행은 슬그머니 금리를 0.75% 포인트 내렸다. 12%였던 올해 물가목표도 15%로 변경해 물가 억제를 위한 국민고통을 덜어주려는 제스추어를 썼다. 게다가 세수확보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소득세를 신설하려고 법안을 준비했다.

마크리 정부가 이처럼 경제 개혁 속도를 다소 늦춘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자만감이다. 지금껏 개혁조치로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었고,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니 조금 천천히 가도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마크리 대통령은 점진주의(gradualizm)을 표방했다.

둘째는 지지율 하락이다. 지난해 11월 여론조사에서 마크리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52%였지만, 올들어 지난 4월 조사에선 43%로 뚝 떨어졌다.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에너지산업에 대한 정부보조금을 줄이니 에너지 가격과 대중요금이 폭등했고, 결국은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난 것이다. 국민들은 경제개혁이니 하는 거시적 원칙엔 찬성하지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혜택을 줄이거나 요금이 인상되면 표를 주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지지율에 민감하다. 대선은 내년말이지만, 마크리 정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개혁속도를 늦추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마크리 정부의 개혁지연 사인이 나타나자, 이번엔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 땅을 떠나기 시작했다. 불에 한번 데인 사람은 솥두껑보고도 놀란다고 한다. 앞서 페론주의자들이 집권할 때 투자한 돈을 떼먹은 적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조급하게 탈출을 시도했다.

중앙은행이 1월에 단행한 금리인하 조치, 마크리 정부의 물가목표 상향조정, 해외투자자들에 대한 과세조치 등 일련의 조치들이 외국인 탈출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외국인들은 현지 페소화를 팔고 달러를 사재기 시작햇다. 페소화는 올들어 20% 가량 폭락해 신흥국 통화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4월말 이후 페소화 하락세는 급격하게 나타났고, 5월 3일 하룻동안 7.8%나 폭락했다. 닷새 동안 외환 방어를 위해 보유고에서 43억 달러를 꺼내 퍼부었지만, 방어에 실패했다. 아르헨티나 외환시장은 며칠 내에 붕괴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위키피디아

 

결국 아르헨티나의 정책당국자들은 극약처방을 썼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금리를 40%까지 올렸다. 금리 40%는 1억원을 빌리면 이자만 연간 4,000만원을 내는 폭리의 구조다. 이런 금리를 주고라도 달아나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잡겠다는 것이다.

대폭의 금리인상은 통화가치 폭락을 저지하기 위해 국가가 쓰는 최후의 수단이다. 우리나라도 1998년 외환위기때 금리를 대폭 인상했고, 터키정부는 2014년 리라화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4.5%에서 10%로 올렸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와의 크림반도 분쟁 이후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로 인한 위기에 대처해 금리를 10,5%에서 17%로 인상했다. 러시아는 1998년 위기 때엔 금리를 무려 150%로 올렸지만, 방어에 실패, 모라토리엄(국가 채무유예)을 선언한 바 있다.

고금리는 외국인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지만, 자국내 채무자들에겐 고통이다. 경제의 악순환이 예고된다. 하지만 외국인 탈주를 막아 외환위기를 저지하기 위해선 어쩔수 없이 선택하는 처방이다.

 

마크리 정부는 금리인상에 이어 느슨했던 개혁조치를 다시 바짝 조이겠다고 선언했다. 재정적자 목표를 당초 3.2%에서 2.7%로 하향조정하고 물가 목표도 15%로 하향조정하겠다고 했다. 덕분에 4일(현지시간) 페소화 환율은 전날 종가인 1달러당 23.30에서 이날 오전 21.70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정부와 중앙은행의 조치가 시장에 먹혀들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설사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마크리 정부는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경제개혁을 지속하라는 외국인 투자자와 개혁에 저항하는 노동대중과 서민들이 마크리 정부의 조치에 반대 방향에 서 있다. 벌써부터 페론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노조가 반발하는 분위기다. 그들은 물가가 오른 만큼 임금을 올려달라고 아우성이다.

마크리 대통령에겐 다소 시간의 여유가 있다. 대통령 선거가 내년 10월이기 때문에 표를 의식하지 않고 과감한 경제개혁을 단행할 시간이 조금은 남아 있다. 그러나 개혁을 지속할 경우 민심과 표를 잃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마크리 정부는 개혁보다는 표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영화 ‘에비타’에서 마돈나는 페론의 아내 에바 역을 맡아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라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노래했다. 하지만 에바의 나라는 그의 남편의 좌파 철학으로 무너졌다. 오랫동안 아르헨티나를 지배해온 국가사회주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단절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던 마크리 대통령도 재선을 앞두고 페론주의 단물에 젖어있던 국민들과 영합할지를 고만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 /그래픽=김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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