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작은 집"...고립무원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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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작은 집"...고립무원이란 이런 것
  • 김이나 에디터
  • 승인 2018.04.14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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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그리드가 가져다 준 깊은 성찰

이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헌 집에서 새집으로, '남'의 집에서 '내' 집으로 가는 일이라면 짐짓 마음이 들뜨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옮겨가는 그 자체는 무척 성가신 일이다. 성가신 이유는 여러 가지다. 비용을 더 들여 포장 이사를 하면 그나마 짐을 싸는 수고는 덜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할 일이 다 사라진 건 아니다. 냉장고를 비우고 쓰지 않는 것들을 버려 짐을 줄여야 하고 그 후 어딘가에 전화를 해야 한다. 집 전화를 이전하고 가스를 철거하고 인터넷을 옮겨야 한다. 예전엔 가자마자 집 전화와 TV를 연결하는게 먼저 였다. 점심은 짜장면을 먹었더라도 저녁엔 된장찌개라도 끓여먹어야 하니 도시 가스 연결 또한 우선 순위다.

지금은 어떤가. 아이들이 이사한 집을 들어서면서 묻는 말은 이거다.

“엄마, 와이 파이는?”

아이들 입장에선 물, 전기, 가스 보다도 중요한 게 와이파이다. 와이파이를 연결하러 오신 기사님은 구세주다.

 

숲 속의 작은, 그러나 결핍된 집

 

▲ "숲 속의 작은 집" 포스터 / tvN

 

최근 재미있는 방송을 봤다. “숲 속의 작은 집”. 제목이 이쁘다. 그런데 부제는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

“현대인들의 바쁜 삶을 벗어나 꿈꾸고는 있지만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현실을 대신해 매일 정해진 미니멀 라이프 미션을 수행, 단순하고 느리지만 나 다운 삶에 다가가 보는 프로그램” 이라고 제작진은 밝히고 있다.

얼굴이 익히 알려진 배우들인 소지섭, 박신혜가 1박 2일, 혹은 2박3일 동안 숲 속 작은 집에서 사는 것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그들은 피실험자로 불린다.

세상과 멀리 떨어진 숲 속의 피실험자들. 스스로 지은 집에서 사는 건 아니지만 마침 책 한 권이 떠오른다. 《월든 Walden, or Life in the Woods》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안정된 직업을 갖지 않고 측량 일이나 목수 일 같은 정직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했던 그는 1845년 여름부터 1847년 가을 까지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근처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2년에 걸쳐 시도했다. 심지어 이 숲 속 생활은 소로우 한창 때인 28세에 시도한 것이었다고.

문명사회에 거부감을 느끼고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롭기를 꿈꾸던 소로우는 이 책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스스로 실천하고 증명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적 삶을 제시한다.

19세기 중반의 소로우 처럼 도끼 한 자루만 들고 숲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피실험자들은 그러나 자발적 고립이 가능하기 위한 환경, 즉 ‘오프 그리드’ 환경에 놓여지게 된다.

 

자발적 고립무원은 과연 어떤 것일까

 

오프 그리드 off grid.  grid는 격자무늬라는 뜻에서 출발하여 최근엔 전기・가스 등의 공급망을 일컫는다. 즉 공공 전기, 수도, 가스가 제공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전기는 태양광으로, 가스는 휴대용 버너로, 수도는 미리 지급된 정해진 양의 물로 대체된다. 난방은 장작 난로가 제공되었다. 사실 물리적으로 먼 곳에 떨어져 생활하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이미 있다.  ‘정글의 법칙’ 에서 출연자들은 아예 'non-grid' 생활을 한다. “숲 속의 작은 집”은 물리적으로 떨어진 것 보다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떨어진 자발적 고립에 초점을 맞춘다.

이사와 함께 끊어진 공공 서비스 망으로부터의 고립이 2~3시간만 넘어도 힘든 현대인들인데 스스로 그 망으로부터 떨어지는 시도를 해본다.  리액션과 참견이 이어지는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피실험자들은 솥밥을 하고 장작을 패고 필요한 건 스스로 만들어 보는 시도를 한다. 다소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대신 그들은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남을 느낀다. 피실험자들은 그 시간에 옷걸이나 신발 받침대도 만들고 보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며 물 소리도 듣는 등 그 시간을 오롯이 나만을 위해서 쓴다.

 

▲ Walden pond / Wikimedia Commons

 

방송은 자연스럽게 ASMR도 시도한다. 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쾌락 반응.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후각적 혹은 인지적 자극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 따위의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바람 부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을 듣는 청자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얻고 치유됨을 느낀다고 한다.

소음이 사라진 곳. 피실험자들은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계곡을 찾아가고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눈을 뜨고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인다. 고립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으로 동화됨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소로우도 숲속의 삶을 통해 인간이 자연의 일부며, 문명에 의지하지 않는 ‘자발적 고립' 으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피실험자들은 자신에게 집중한다. 처음엔 멍 때리는 듯 보였던 그들은 이제 물소리를 들으며 정화되고 별을 바라보며 명상을 한다. 타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일시 중지되었고 나 자신과의 대화는 더 깊어지고 길어진다.

물론 이 실험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시도 자체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겐 새로운 생각 거리를 주는 것임엔 틀림없다. 풍요롭지만 어딘가 불편한 삶, 폭은 넓으나 깊이가 없는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한 번쯤 기꺼이 실험 대상이 되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사족 한 마디.

이 프로그램의 취지와는 결을 달리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도 우린 기억해야 한다. 넘치는 것에 지치고 과한 것에 피로도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우리 주위엔 결핍되고 부족해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뭐든 골고루 구석구석 채워지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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