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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들

기사승인 2018.02.28  14: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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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전 IMF 위기의 추억…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현명한 선택을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잃은 채 거리로 내몰리고,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이기도 하던 IMF외환위기 사태도 벌써 20여년전의 일이 되었다. 그 몇 년 후 미국으로 나가보니, 은행의 현지조직이나 여건이 예전 같지 않았다. 일부 지역의 영업점들이 철수했고, 과거 은행에서 보유하던 부서장 사택들도 월세 기천(幾千) 달러의 임차주택으로 변해 있었다.

당시 뉴욕이나 뉴저지 지역에서는 집값이 급등한 때라, 그 수준의 월세로는 도심에서 4~50km 떨어진 외곽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래야만 비록 방문을 열면 서로 맞부딪치고, 앉으면 코가 세면실 벽에 닿을 듯한 구조일지라도, 그런대로 집 주변의 녹색공간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언젠가 해외점포장으로 나오면 품위 있게 제대로 된 비즈니스와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해보겠다’는 소싯적의 바램은 그만 신기루처럼 되고 말았다.

그렇게 사택들을 처분하고 난 뒤로 미국의 부동산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오르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많은 손해를 본 셈이 된다. 휘몰아치는 위기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이를 두고 “자신들의 자산조차 그렇게 운용하는 은행에다가 어찌 예금이나 자산을 예탁할 수 있겠느냐?”는 농담을 건네는 고객들도 있었다.

IMF사태를 상상치도 못하던 1990년대 초반에 은행 자체적으로 무수익자산 감축운동을 벌이면서 해외사택 처분문제가 대두된 적이 있었다. 그때만해도, 사택을 처분할 때의 수익과 지점이 존속하는 한 계속 지출될 임차료 등의 비용을 분석하여 매각의 실익이 없음을 진언하였고, 그냥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릿발 같은 구조조정 분위기 속에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결국 자산은 자산대로 헐값에 팔리고, 아까운 월세 내가며 잔뜩 움츠린 채 국제금융시장의 매서운 바람을 견뎌내야 했던 것이다.

 

▲ 북부 뉴저지 주택가 풍경 /사진=조병수

 

그러던 시절에 업무용차량을 조정하던 이야기도 흥미롭다. 예전에는 진출지역에서의 대표성을 고려하고 현지 금융기관들과의 위상을 맞추느라고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차 중에서 어느 정도 상위의 차종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합병은행 출범의 회오리 속에서 모두 국산 중형차로 바뀌어 있었다.

출장 나온 고위임원이 “미국산 큰 승용차를 처분하고, 국내점포와 같은 수준의 국산 차를 타라”고 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겪고 공적자금이 들어온 은행의 해외지점에서, 미국산 큰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서슬 퍼렇던 경영진의 지시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을 것이고, “해외에서 근무할 때는 가급적 그 나라 차를 사용해야 그 나라 문화를 알 수 있다”는 그런 여유 있는 항변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은, 멀쩡히 잘 굴러 다니던 큰 차를 헐값인 1만달러 정도에 팔고, 그 당시 미국에서 구입할 수 있었던 2,000cc용 외형에다가 2,600cc 엔진을 장착한 한국브랜드 차를 2만6천달러나 주고 새로 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차종이 국산이면 되니까 모든 옵션을 다 넣어서 샀다”거나,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비용을 써가며 새로 장만한 차들 중 일부는 “주행 중에 엔진이 꺼지는 위험한 상황을 자주 연출한다”는 뒷얘기는, 차마 그냥 웃어넘길 수 만은 없는 한편의 코미디 같았다.

국내의 도로 사정이나 주행거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광활한 미국의 특성이 간과된 아쉬움은 차치하더라도, 그 당시 경제사정이나 은행의 여건을 고려한다면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외화를 아꼈어야 했다. 설사 그렇게 교체방침을 정했더라도 기존 차량의 노후교체시기에 따라 점진적으로 추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때의 분위기는 실질(實質)보다는 일괄교체라는 외형(外形)을 우선했던 모양이었다.

구조조정이나 합병, 자산의 헐값매각이나 뭉텅뭉텅 빠져나가던 컨설팅비용, 용역비 등등 그 시절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겪은 수많은 애환들에 비하면 사소하기 그지없는 얘기들이지만, 사상초유의 IMF외환위기를 헤쳐나가려고 허둥대던 우리네 모습들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다행히 그 후 여러 여건들이 많이 개선되는 것을 보고 미국 땅을 떠났다. 그리고 문제를 일으키던 국산 차들의 성능도 불과 몇 년 만에 많이 좋아져서, 2000년대 후반에는 수많은 한국브랜드의 승용차들이 미국의 고속도로를 줄지어 달려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세상이 그렇게 빨리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빠르게 변해가는 세월의 풍상(風霜)을 딛고 다시금 우뚝 솟아나던 우리경제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양(洋)의 동서에서 밀려드는 마찰과 갈등의 증폭 소식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던 IMF구제금융시절 전후의 기억들이 겹쳐지면서 가슴을 저며온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고, 북적거리며 돌아가던 공장들이 적막강산의 폐허로 바뀌어버리던 그런 아픔과 눈물들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오늘이 지난 날의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이듯,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현명한 선택들이 각 부문의 책임 있는 위치에서 이루어지기를 기원해본다.

 

조병수 프리랜서 bscho5@hotmail.com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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