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와 악기는 같은 것”…김훈 「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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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악기는 같은 것”…김훈 「현의 노래」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2.2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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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들리는 동안, 울리는 동안만의 소리니…주인이 없다”

 

죽음을 앞두고 우륵이 제자 니문에게 말했다.

- 니문아, 내가 죽거든 저 열두줄을 신라로 보내라.

- 이찌 하필 신라로……

- 악기란 아수라의 것이다. 금을 신라로 보내라. 거기가 아마도 금의 자리이다.

 

김훈의 「현의 노래」(2004년, 문학동네) 후반부의 대화다. “악기란 아수라의 것이다”라는 우륵의 말에 이 소설의 방점이 찍혀 있다.

김훈은 문학평론가 신수정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악기와 무기라는 상징으로 풀어보려고 했는데요. 악기가 홀로 위대하고 홀로 아름답고 무기가 추악하고 야만적이라는 구분은 성립할수 없을 것 같아요. 결국 둘은 서로 같은 것이고 서로를 동경하는 것이겠죠. 나는 악기는 무기를 동경하는 것이고 무기는 악기를 동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악기와 무기.

▲ ‘현의 노래’ 책표지 사진

「현의 노래」는 대가야가 신라 이사부(異斯夫) 장군에 의해 멸망하는 시기에 악사 우륵(于勒)을 주인공을 설정한 소설이다. 악기는 우륵이 창조한 가야금, 무기는 이사부 장군이 이끄는 신라의 무력, 대장장이 야로가 만드는 창과 칼을 의미한다. 나라를 뺏고 빼앗기는 전쟁 속에서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우륵의 고뇌를 그렸다.

가장 대비되는 인물이 가야금의 예인 우륵과 철의 장인 야로다.

대가야의 녹을 받아 먹는 야로는 가야를 배신하고 무기를 만들어 신라군과 백제군에 넘긴다. 그리고 나중에 신라 이사부 장군에게 투항한다.

우륵은 가야 임금의 장례식에서 가야금을 연주하고 춤을 춘다. 그도 이사부에게 투항해 진흥왕 앞에서 연주하고 춤을 춘다.

김훈은 무기는 악이고, 음악은 선이다는 개념을 설정하지 않았다. 무기와 악기는 주인이 없고, 사용하는 자의 것이라며 동일한 선상에서 다루었다.

 

신라의 병부령 이사부는 투항한 우륵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 소리는 주인이 없는 것이냐.

- 소리는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고 울리는 동안만의 소리니 아마도 그럴 것이요. [……]

- 그 늙은 대장장이(야로)가 말하기를, 병장기는 주인이 따로 없어서 쥐는 자마다 주인이라 하였다. 소리는 병장기와 같은 것이냐?

- 소리는 없는 세상을 열어내는 것인데, 그 세상은 본래 있는 세상의 것이오. 병장기가 어떠한 것인지는 병부령께서 더 잘 이시리이다.

- 그러니 아마도 소리와 병장기는 같은 것인 모양이로구나.

 

이사부는 앞서 투항한 대장장이 야로는 죽였지만 악사 우륵은 살려 주었다. 병장기는 쥐는 자가 주인이어서 대장장이가 만든 무기가 적의 것이 될수 있기에 죽인 것이고, 악기는 적의 손에 넘어가더라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는 설정이다.

김훈은 우륵을 통해 ‘악기는 아수라의 것’이라고 정의한다. 소리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패한 가야 마을의 소리를 담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가야금을 죽기 전에 신라에 넘긴 것이다.

우륵은 가야금을 신라에서 온 제자들에게 주면서 “너희들의 나라가 삼한을 다 부수어서 차지한다고 해도 그 열두줄의 울림을 모두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늘 새롭고 낯설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 신라 진흥왕 때(537) 가야악사 우륵이 망명의 한을 달래기 위해 가야금을 타던 곳으로 알려진 충주 탄금대 /문화재청

 

김훈은 이순신 장군 일대기를 그린 「칼의 노래」를 집필하기 이전부터 「현의 노래」를 기획했다고 한다. 그는 무너져 내리는 가야국의 현실과 악사 우륵의 노래를 고스란히 담아 내고 싶어 했다.

모여 있거나 흩어져 있으며, 물결을 이루거나 장애물을 찢고 나아가는 소리. 김훈은 삶과 죽음이 ‘소리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며, 그 과정에서 소리가 머무는 울림판으로 쇠를 논한다. 쇠의 흐름과 쇠의 내막, 쇠의 세상은 소리의 길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와 예술, 권력과 욕망, 제도와 풍경, 국가와 개인, 언어와 자연의 대비 역시 다르지 않다고 했다.

 

현의 노래에서 또다른 재미는 여성 캐릭터 아라다. 궁녀로 궁궐에 들어가 순장을 거부하며 도망치다가 야로와 우륵을 거쳐 다시 순장되는 가련한 여성이다. 김훈은 아라라는 여성을 수동적으로 그렸다. 죽음을 피해 도망다니며 만난 야로와 우륵, 우륵의 제자 니문에게 순종하다가 다시 관헌에게 붙잡혀 땅 속에 묻히는, 가야 순장제도의 대상으로 그렸다. 생명을 추구하는 본연의 모습 이외 여성의 주체적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경북 고령의 대가야 고분군. /사진=김인영

 

김훈은 작품을 쓰기 위해 대가야의 터 경북 고령을 자전거를 타고 자주 답사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발굴된 대규모 무덤을 탐방하고 우륵이 살던 집터, 대장간들을 둘러보며 인간세계의 구조를 구상했다.

그는 고령을 둘러보며 “무기와 악기가 하나의 마을에 공존하고, 무기를 장악한 놈은 그 무기의 힘을 가지고 나라를 만들어가고 악기를 가진 놈은 이도 저도 아니고 설 자리가 없으니까 도망할 수밖에 없는구나 생각했다. 그렇다고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쪽이 악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신수정과의 대담에서 밝혔다.

소설의 세팅은 대장간과 우륵의 집 사이에 대궐이 있고, 대궐 뒤에 눅은 무덤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답사 결과, 얻어낸 결론이다. 대장장이 야로는 대장간이 있던 마을의 이름인데, 지금도 야로면이 있다. 야로면이란 지명을 야로라는 인명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의 소설이 허무적이라는 견해를 인정했다. 김훈은 “제가 역사에 대해 허무주의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그런 정서나 취향은 기지고 잇는 것은 맞는데, 그것이 주의라고 말할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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