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30년간 고민해서 쓴 글씨, 침계(梣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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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30년간 고민해서 쓴 글씨, 침계(梣溪)
  • 김현민
  • 승인 2018.02.2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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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추사 김정희 글씨 3점 보물 지정 예고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년)는 18세기 말에 태어나서 19세기 외척 세도 정치기에 활동한 조선 미술계의 불꽃과 같은 존재다. 조선이 고유 문화를 꽃피운 예술가이며, 북학 사상으로 조선 사회의 변화를 추구한 인물이다. 그가 어린 시절 서울 집 대문에 입춘첩을 써 붙였는데 당시 재상 채제공(蔡濟恭)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 아이는 글씨로서 대성하겠으나 그 길로 가면 인생 행로가 몹시 험할 것이니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하시오.”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추사의 천재성을 재상이 알아본 것이다.

김정희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까지 문인이자 정치가로 활동했으며, 금석문(金石文)의 서예적 가치를 재평가한 추사체(秋史體)를 창안해 한국 서예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문화재청은 20일 김정희의 글씨 3점을 보물로 지정예고했다. 세 작품은 ① 대팽고회(大烹高會) ② 차호호공(且呼好共) ③ 침계(梣溪)다.

특히 침계는 30년간 고민하다 쓴 글씨체라고 한다.

 

▲ 김정희의 침계(梣溪) /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3점의 서예도 김정희의 학문적, 예술적 관심과 재능이 구현된 작품이다. 김정희의 서예 3점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에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다.

 

▲ 김정희의 대팽고회(大烹高會) /문화재청 제공

① 대팽고회(大烹高會)

추사가 세상을 뜬 해인 1856년(철종 7년)에 쓴 만년작(晩年作)으로, 두 폭으로 구성된 예서(隷書) 대련(對鍊)이다.

내용은 중국 명나라 문인 오종잠(吳宗潛)의 「중추가연(中秋家宴)」이라는 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푸짐하게 차린 음식은 두부‧오이‧생강‧나물이고, 성대한 연회는 부부‧아들딸‧손자라네(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라는 글귀를 쓴 것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이 가장 이상적인 경지라는 내용에 걸맞게 꾸밈이 없는 소박한 필치로 붓을 자유자재로 운용해 노(老) 서예가의 인생관(人生觀)과 예술관(藝術觀)이 응축되어 있는 김정희 만년의 대표작이다.

 

② 차호호공(且呼好共)

“잠시 밝은 달을 불러 세 벗을 이루고, 좋아서 매화와 함께 한 산에 사네(且呼明月成三友, 好共梅花住一山)”라는 문장을 예서로 쓴 대련(對聯) 형식이다. 두 번째 폭에는 ‘촉(蜀)의 예서 필법으로 쓰다(作蜀隸法)’라는 글귀를 넣어 중국 촉나라 시대의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응용했음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촉나라 예서(隸書)는 단정하고 예스러운 필치가 특징이다.

▲ 김정희 차호호공(且呼好共) /문화재청 제공

이 작품은 금석학에 조예가 깊었던 김정희의 학문이 예술과 결합된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필획 사이의 간격이 넉넉하고 자획의 굵기가 다양하며, 빠른 붓질로 속도감 있는 효과를 내는 등 운필(運筆)의 멋을 최대한 살려 김정희 서예의 수작(秀作)으로 꼽힌다.

 

③ 침계(梣溪)

화면 오른쪽으로 치우쳐 예서로 ‘침계(梣溪)’ 두 글자를 쓰고, 왼쪽에는 행서(行書, 약간 흘려 쓴 한자 서체)로 8행에 걸쳐 발문(跋文)을 썼으며, 두 과의 인장을 찍어 격식을 갖추었다. 침계(梣溪)는 김정희와 교유한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의 호(號)이다.

발문에 의하면 윤정현이 김정희한테 자신의 호를 써 달라고 부탁했으나 한나라 예서에 ‘침(梣)’자가 없기 때문에 30년간 고민하다가 해서(楷書)와 예서를 합한 서체로 써 주었다고 한다. 작품의 완성도를 갖추기 위해 수십 년을 고민한 김정희의 작가적 태도와 이러한 김정희를 기다려 준 윤정현의 인내와 우정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해서와 예서의 필법을 혼합해서 쓴 ‘침계’는 김정희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구성과 필법에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김정희의 학문‧예술‧인품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의미가 크다.

 

* 대련(對聯): 두 폭의 축(軸)으로 된 회화나 서예작품. 두 폭의 내용과 양식이 연결되며 서로 대칭되는 도상(圖像)을 배치하거나 자수(字數)를 맞춰 한 묶음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
* 예서(隸書): 중국 한나라 때부터 쓰인 옛 서체
* 해서(楷書): 예서에서 발달한 서체로 일점일획을 정확히 독립시켜 쓴 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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