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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금은 어떻게 즉위했을까

기사승인 2018.02.14  17: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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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위, 사위, 반정 등 어떤 경우에도 즉위식 가져…통과의례의 문 거쳐야

 

▲ 동궐도에 그려진 왕이 되기 위한 통과의 문들 /정환선 제공

 

조선시대에 임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즉위를 할까.

조선시대에 왕위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① 세종(世宗)과 같이 선왕으로부터 직접 자리를 물려준다는 전교[禪位敎]를 받고 왕위에 오르는 양위(讓位) ② 왕이 훙(薨, 돌아가심)하고 난 후 후계자가 그 뒤를 혈통을 위주로 잇는 방식인 사위(嗣位) ③ 중종과 인조처럼 기존의 왕을 쫓아내고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는 반정(反正)이 있다.

어떤 방식이든 왕은 즉위식을 거쳐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왕위 계승방식은 선왕이 죽고 난후 계승하는 사위(嗣位)였다.

창덕궁을 예를 들어 즉위식을 꾸며보자.

새 임금은 선원전을 나와 통과의례의 문을 거치는데, 숙종실록 1권은 왕세자가 왕으로 즉위하는 이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왕세자가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卽位)하였다. - 중 략 - 이날 성복(成服:상복을 입는 절차)을 마치고 왕세자가 관면(冠冕)과 길복(吉服)을 갖추고, -중략- 왕세자가 선정문(宣政門)으로부터 걸어 나와서 연영문(延英門)을 따라 가서 숙장문(肅章門)을 나와서 인정문(仁政門)에 이르니, 승지와 사관(史官)이 따라 나갔다.

왕세자가 서쪽을 향하여 어좌(御座) 앞에 서서 차마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소리를 내어 슬피 울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승지와 예조 판서가 서로 잇달아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를 권하였다. 삼공(三公)이 도승지와 더불어 나아가 왕세자를 부축하면서 번갈아 극진히 말하였다. 왕세자가 어좌(御座)에 오르니, 백관들이 사배(四拜)하고 의식대로 산호(山呼)하였다. 예를 마치자, 사왕(嗣王)이 인정문(仁政門)으로부터 인정전(仁政殿)에 올라가 인화문(仁和門)으로 들어와서 여차(廬次)로 돌아왔는데, 우는 것이 끊어지지 않았으며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라고 적고 있다.

 

왕이 돌아가시면 혼이 다시 돌아오도록 5일 동안 왕이 계속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세자는 즉위하지 않고 있다가 6일 째 되는 날 세자는 빈전(시신을 모시는 곳)이 차려진 선정전 옆 여막(廬幕, 선정전 옆에 임시로 설치한 거처)에서 나와 상복(喪服)을 잠시 벗고 대례복(大禮服)으로 갈아입은 후 통과의례의 문인 연영문과 숙장문을 지나 인정문 앞마당에서 즉위식을 치뤘다. 조선 27대 왕 중 인정문 앞에서 처음으로 즉위한 왕은 성종이후 즉위한 연산군이다. 그리고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등이 인정문 앞마당에서 즉위하였다.

왕(王)이라는 글자는 천(天) 지(地) 인(人)을 나타내는 3개의 일(一)이 뚫을 곤(|)으로 연결된 형상이다. 즉 국왕이란 덕으로써 우주를 관통하는 존재이자 하늘의 명(天命)을 받은 초월적 존재로 생각하여 중국에서는 덕이 있는 자에게로의 선양하는 계승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도 통치자가 되려는 사람은 치자(治者)의 으뜸 요건인 창성(昌盛)하고 아름다운 덕을 갖춘 이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현민 op@opnews.co.kr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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