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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핵소 고지」, 비폭력주의자 의무병 스토리

기사승인 2018.02.14  16: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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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적 관념에서 만들어진 영화…데스몬드 도스의 실제 이야기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를 들라고 하면, 단연 오키나와 전투가 선두에 꼽힐 것이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인 1945년 3월말부터 6월 23일까지 3개월 남짓 전투에서 전사자만 20여만명에 이른다. 일본은 본토 사수를 위해 마지막 거점으로 오키나와를 방어했고, 미국은 본토 공격의 교두보로 오키나와를 확보해야 했다. 오키나와에서 엄청난 희생을 내고서 미국은 더 이상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심한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가공할만한 무기가 사용된 것도 오키나와 전투 때문이었다.

 

▲ 핵소고지의 위치 /구글 지도

 

영화감독으로 나선 배우 멜 깁슨은 이 가공할 전투에서 비폭력주의적 요소를 찾았다. 바로 데스몬드 도스(Desmond Doss)라는 인물이다. 멜 깁슨 감독은 영화 「핵소 고지」(Hacksaw Ridge)는 데스몬드 도스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때는 1945년 5월 5일, 오키나와 남쪽 핵소 고지(마에다 고지)에서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바꿀 대혈투가 벌어졌다. 이 곳에서 양심적 집총 거부자인 데스몬드 도스가 비무장 의무병으로 전투에 참가해 부상병 75명의 생명을 구한다는 줄거리다.

 

▲ 영화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주말에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핵소 고지」(2017년 국내개봉)를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형적인 미국적 이데올로기가 가미된 영화였다. 전쟁에는 참여하되, 평화를 사랑하는 주인공으로 실제 인물 도스가 선택된 것이다.

▲ 영화 포스터 /네이버 영화

군인 모두가 도스와 같은 인물이라면 그 전투는 어떻게 될까. 백전백패다. 미국의 이념이 허용하는 공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죽고 죽이는 전투에서 의무병이라고 총을 들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한국과 같은 동양사회에서는 인정받기 힘들다. 평화, 인류애, 공격에 대한 정당방위와 같은 미국적 관념이 영화를 만들어 냈다.

전쟁에서 비폭력주의가 성립할수 있는가. 도스 한사람에 집중하면 묵직한 영화 스토리 하나는 건지겠지만, 실제의 전투에서 비폭력주의는 성립할수 없다. 멜 깁슨는 「핵소 고지」에서 이 주제를 풀어 나가려고 대단히 애쓴 흔적이 보인다.

영화를 다보고 난 후 느낌은 이렇다.

“도스 한사람이면 된다. 전투원 모두 도스와 같은 인물이 되겠다고 하면 반드시 패배하고, 굴욕의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도스의 비폭력주의는 그만의 신념이지, 다른 전투원의 희생을 댓가로 성립되는 것 아닌가.”

 

▲ 마에다 절벽의 데스몬드 도스 /데스몬드 도스 위원회

 

데스몬드 도스는 종교적 신념으로 집총을 거부했다. 영화에서는 다른 이유로 나오지만…. 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였다.

▲ 군인시절 도스 /도스 위원회

도스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아니었다. 전쟁으로부터 조국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지 않아도 되는 의무병으로 자진 입대한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토요일(안식일)에 교회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지휘검열을 거부해 부대 내 문제병사로 떠올랐다. 요즘으로 치면 관심사병이다. 다만 응급 환자를 돌보는 일은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안식일에도 수행했다.

그는 군사법원에 넘겨졌지만, 총을 들지 않고도 참전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받아 제77보병사단에 배속되어 태평양 전선에 배치된다. 그는 태평양 전쟁의 전투들을 차례차례 거치며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신앙에 의지해 소총 대신 들것과 붕대 그리고 밧줄만을 들고 누빈다.

1945년 미국은 일본 본토 침공에 앞서 오키나와에 상륙 작전을 펼친다. 5월 5일 미 육군 제 77보병사단 제 307보병연대는 오키나와의 마에다 절벽 반대편에 숨어있는 일본 육군 지휘소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하달받게 된다. 도스가 소속된 제1대대 200여 명은 벼랑을 향해 진격한다. 하지만 언덕에 도착하자마자 매복한 일본 육군의 치열한 습격이 시작되고 대포와 기관총에 집중 포화를 맞은 1대대 100여 명이 순식간에 쓰러지고 일부만 후퇴하게 된다.

의무병 도스는 적진 한복판에서 자신의 일을 시작한다. 일본군 기관총의 포화 속에서도 도스는 쓰러진 동료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살아있는지 확인하였고 살아있는 동료가 있으면 들쳐 업거나 둘러메는 식으로 한 명씩 아군이 있는 곳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 들것에 싣고 밧줄에 묶어 안전 지역으로 보냈다. 그렇게 75명의 생명을 구한 도스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본진으로 귀환한다.

 

▲ 전역후 도스 /도스 위원회

그후 도스는 미국 사회에서 영웅이 된다. 총을 들지 않은 군인으로, 1945년 10월 12일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미군 최고의 영예인 ‘명예의 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받는다. 그를 기념하는 동상도 미국에 세워져 있고, 미국 내에선 의무병의 전설처럼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를 기리는 ’데스몬드 도스 위원회‘도 설립되어 있다.

그는 2006년 3월 23일 향년 87세의 일기로 사망한다. 그의 장례식은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진행되었고, 테네시주의 채터누가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도스는 본인의 스토리를 영화화하자는 제의를 숱하게 받았지만, '땅 속에 묻힌 이들이 진정한 전쟁 영웅'이라며 거절해왔으나, 그 이야기를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끈질긴 설득 끝에 허락했다고 한다.

멜 깁슨은 고인이 된 주인공 도스에 매료되어 이 영화 제작에 애착을 가졌다. 멜 깁슨 감독은 “어느 누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무기 하나 없이 가려 한단 말인가. 실화였기 때문에 호소하는 바가 컸고, 영화를 통해 이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의욕을 보였다.

영화 「핵소 고지」는 제7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자 2016 전미 비평가 협회 선정 ‘올해의 영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TOP 10’에 이름을 올리는 등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을 이어 나갔다.

 

▲ 테네시주 국립묘지의 데스몬드 도스 묘지 /데스몬드 도스 위원회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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