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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본문 1문단⑤…一積十鉅 無匱化三極

기사승인 2018.02.10  12: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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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정답이 있다면 아마 그 답을 찾아온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겁니다. 정답을 알아내려고 커닝뿐만 아니라 권력, 금력을 동원할 것이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하는 범죄도 불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답을 풀어낼 수 있는 해답을 보여주는 우주는 각자가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만 스무고개처럼 다음 방법을 일러줍니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각자에게 적합한 맞춤식 담마를 제공해야 결국 외부에서 답을 찾지 않게 되고, 게다가 미리 알려주면 대체로 지금의 과정을 제대로 겪어내서 충분히 다지지도 않고서 월반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맛지마니까야(M53)에 “‘달걀을 바르게 품고 온기를 주어 부화시키면, 그 암탉이 ‘병아리들이 발톱이나 부리로 껍질을 깨서 안전하게 나오길!’이라고 바라지 않더라도 병아리가 안전하게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듯이 불자(佛子)도 계(戒)를 지키며, 감각기능의 문을 수호하고, 적당한 식사량을 알며, 항상 깨어있고, 바른 성품(믿음·양심·수치심·배움·정진·사띠·반야)을 갖추며, 4선정을 뜻대로 얻는다면, 학인으로서 불자는 껍질을 깨고 나오고 바르게 깨달으며 속박에서 위 없는 평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고 합니다. 즉, 한도가 차면 저절로 다음 차원으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요령을 피워서 눈속임으로 승진이나 월반할 수 있으나 완벽한 우주는 어림없습니다. 이는 지혜로운 자식으로 키우려는 부모처럼 거꾸로 신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체로 마음이 약해지곤 하는 부모의 방식을 우주에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세간의 현상이 기대대로 되지 않는 것, 즉 세상이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존재상태가 외부현상을 펼쳐낸다는 진실을 터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깨달음이란 것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전후(前後)가 완전히 달라지는 패러다임전환이므로 내면에서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고 겉으로 아무리 바뀐 척 위장한다 해도 절대로 완벽한 우주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프로기사가 아무리 몇 수를 내다보고서 바둑을 둔다고 해도 알파고에는 계산이 통하지 않듯이, 아무리 앞날을 계산해서(잔머리를 굴려서) 처신한다고 해도 완벽한 신에게는 편법과 요령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알파고와 바둑을 둔다면 요령을 피우기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최선의 수를 두는 것이 중요하듯이, 이 우주에서 산다면 계산하기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하고 경쟁하면서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려고 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남보다 더 나아지려고 하는 것은 도움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無盡本하고 있는 사람들에 비교해서는 월반인 셈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편법과 탈법이 통하는 듯이 보일지라도 완벽하게 작동하는 우주에는 통하지 않으므로 토끼보다 거북이의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시험이 점수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을 제대로 습득했는지를 피드백하는 기회가 되어야 하듯이, 수행에서도 관문 통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배양된 실력이 중요합니다.

 

에구~ 저도 실전에서 어쩌다 하나 맞아서 성공했다 싶으면 수행을 통해 하나하나 쌓겠다던 결심도 잊고 금세 날아갈 듯이 월반을 꿈꾸면서 들뜨더라고요. 여하튼 이런 심보도 꿰뚫고 계시니 쑥스럽네요.

 

그러므로 앞으로 자신에게 수행과정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를 안다고 여긴다면 거의 엉터리라고 확신해야 합니다. 매사 미리 준비하는 007 방식보다 그때그때 맞춰가는 맥가이버 방식인 열린 태도를 체득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팔성도(八聖道)는 개인의 수행법이 아니라 수행의 큰 흐름을 일러주고 있을 뿐입니다. 맛지마니까야(M149)에 ‘안眼{~심心}에서 ~~ 감정受을 있는 그대로 알아볼 때, 이것들에 애착하지 않게 된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 알아보면 그에게 정견(正見)이고, 사유하면 그에게 정사유(正思惟)이며, 정진하면 그에게 정정진(正精進)이고, 사띠하면 그에게 정념(正念)이며, 삼매에 들면 그에게 정정(正定)이다. 그리고 이전에 이미 그는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는 현상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 ‧ 사유 ‧ 정진 ‧ 사띠 ‧ 삼매를 중시하라는 말입니다.

이는 삶에서 특정 현상이 벌어졌을 때 세상의 견해에 따르지 말아야, 즉 외부의 단체나 스승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과 관련된 의미인 반야를 체득해야 정견임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yathābhūta 본다는 것은, 현상을 한쪽으로 치우쳐서 왜곡해서 집착해서 보지 않고, 외부의 권위에 의존해서 따르지 않으며, 열린 자세로 현상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적중해서 알아본다는 반야입니다.

칸트의 정언명제가 그렇듯이 팔성도(八聖道)도 형식구조, 즉 수학의 공식처럼 기능하므로 팔성도라는 공식을 이용해서 각자가 해답을 풀어야 합니다. 그것도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답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답일 뿐입니다. 만일 팔성도 자체에서 정답을 구한다면 공식을 풀이에 대입하지 않으면서 수학 공식 자체가 답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학에서 공식이 유도(誘導)되는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수행에서도 수행법이 실행되는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는 공식은 도움되지 않습니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아는 것은 반드시 행해지므로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아직 진실한 앎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사실 현실에서 실행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남모르는 나만의 진실이 그러하듯이 남모르는 세상의 진리도 스스로 실천할 때에야 체득됩니다. 칸트도 영혼·신이 오감으로 감지되지 않으므로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위해 이성을 쓸 때에야 작동된다고 합니다. 두려울지라도 용기를 내서 전혀 가보지 않은 ‘길 없는 길’을 걸어가야 진리가 체득됩니다.

신이 신성을 높은 산, 깊은 골짜기, 바닷속 등에 감춰두려고 했으나 인간이 어찌해서든 찾으리라고 여겨서 각자의 내면에 감춰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내면에 있는 그 신성(神性)은 각자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해답이므로 타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답이 아닙니다.

이 내면의 신성은 각자가 이론으로 접근해서는 절대 알아보지 못하고 용기를 내서 실천해갈 때에야 봉인된 꾀주머니가 하나씩 열리듯이 펼쳐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대각(大覺)을 통해서 한방에 신분 상승함으로써 만사를 해결하려 한다면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세간에 대한 욕심과 원망을 버려야 하며, 외부의 대상에 대한 욕락(欲樂)에서 벗어나고, 세간의 엉터리 명제인 불선한 담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선정과 염처수행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바른 삼매가 아니라 그른 삼매일 뿐입니다. 그래서 ‘삼매는 나쁜 사람이 들 수 없다.’고 합니다. 선정이 아니면 모두 그른 삼매일 뿐입니다.

명상을 통해서 답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모습을 알아볼 기회를 제공할 뿐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상(相 nimitta)을 매개해서 인식하듯이 삼매에서도 (대다수 엉뚱한 것처럼 보이는) 삼매의 상을 제공해서 각자가 해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주가 제공하는 그 상(相 nimitta)을 제대로 알아보고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하면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는 셈입니다. 대다수 특별한 체험을 통해 한방에 의식상승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평소 사띠(sati) 수행을 통해서 상(相)을 알아보는 훈련을 쌓지 않으면 우주가 아무리 대각(大覺)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도 바라는 상이 아니라며 무시해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분노가 내재해 있다면 명상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고 선언하며 드러낼 때야 사라질 수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길을 잃은 상태라면 내비게이션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대다수 일상에서 활용하는 내비게이션은 켜지면 먼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찾는데, 이에 실패하면 목적지를 알아도 쓸모없습니다. 현재 위치를 찾는 데 성공하면 각자 목적지를 입력하고 그러면 그곳으로 갈 수 있도록 실시간 정보를 반영해 길을 안내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목적지를 알아도 자신의 현재 위치를 모르면 내비게이션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듯이, 목적지를 알아도 자신의 현재 입지, 즉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면 수행법이 쓸모없어지고 맙니다. 자기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우주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데, 이는 깨달은 자나 큰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의 목적지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 드는 것은 현재 자신의 감정·욕망·동기 등을 모르거나 마음이 솔직하지 않거나 아니면 그런 마음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내비게이션이 작동되어도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의 길 안내보다 실시간 정보가 반영된 길 안내가 훨씬 효과적이듯이 수행의 로드맵에서도 미리 정해진 지도보다 실시간 정보가 반영된 담마가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지도를 보고서 전체 그림을 파악하고 출발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으나 지금은 실시간 정보를 받기 위한 통신이 중요합니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증에 유비무환으로 미리미리 준비하는 저는 잘한다고 여기고 있답니다. 그런데 나는 철저히 준비했다는 완고함으로 그때그때 나에게 도착하는 알맞은 메시지를 무시하며 닫아버렸네요. 유비무환도 세상 견해를 잘 따랐을 뿐이고요. 아... 실시간 현재의 나를 알도록 돕는 신의 메시지에 열려있지 못해서 여러 가지로 힘들게 사는 저를 보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목적지가 명확하지 않거나 두 곳이라면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안내하지 않듯이, 삶에서도 목적지를 명확히 해야 하고 신과 재물이라는 두 곳을 목적으로 삼지 말아야 원활히 담마를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주우(宙宇) op@o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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