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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있던 석불이 청와대로 옮겨진 까닭은?

기사승인 2018.02.09  18: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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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 테라우치 시기에 이전…문화재청, 보물 지정 예고

 

청와대 경내에 불상이 하나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이다.

부처의 머리(佛頭)와 몸체가 온전한 통일신라 불교 조각으로, 경주에서 가져온 것이다. 문화재청은 8일 제1차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 회의를 열어 청와대 경내에 있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의 학술적․예술적 가치 등을 검토해 보물로 지정 예고하기로 했다.

 

▲ 청와대 경내에 있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문화재청 제공

 

그러면 경주에 있는 불상이 왜 청와대 경내까지 옮겨졌을까.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고 초대 조선총독이 된 테라우치 마사다케(内寺正毅, 1852~1919)와 관련이 있다.

1912년 11월 8일, 테라우치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기 앞서 2박3일 일정으로 경주를 방문해 일대의 유적과 유물을 둘러 보았다. 경주 여기저기를 다니던 테라우치는 고다이라 료조(小平亮三)라는 일본인의 집에서 잘생긴 석불좌상에 눈길을 멈췄다. 테라우치는 그 불상을 몇 번이나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떠났다.

테라우치를 매혹시킨 불상은 원래 경주군 내동면 도지리의 유덕사라는 절터에 남아있던 불상이었다. 「삼국유사」 탑상편에 “유덕사는 신라 태대각간 최유덕이 살던 집을 기부해 지은 절이고, 고려시대에 후손인 최언위가 조상인 최유덕의 초상을 모시고 비석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 유덕사에 있던 불상이 언제, 어느 곳으로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때 테라우치를 수행하던 고다이라는 경주 금융조합 이사의 직책에 있었는데, 총독이 불상을 보고 감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부할 기회를 찾았다. 고다이라는 테라우치가 일본에 머무는 사이에 불상을 서울의 총독관저에 옮겨 놓았다.

당시 총독관저는 남산 왜성대(倭城臺)에 있었다. 왜성대는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주둔한데서 유래한 마을로, 총독 관저는 지금의 중구 예장동 옛 안기부 자리에 있었다. 당시 매일신보는 총독관저로 옮긴 석불을 ‘미남 석불’이라고 보도했다.

그후 1939년대 총독 관저가 현 청와대 자리인 경무대로 이전하면서 불상도 함께 이전했다. 이 석불은 총독관저가 경무대로, 다시 청와대로 바뀌는 동안에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그 자리를 지켜왔지만, 위치가 위치인만큼 세간에서 잊혀졌고, 문화재로서의 본격적인 조사도 어려웠다.

1974년 서울시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해 이 석불을 서울시 유형문화재 24호로 지정했다.

그러다가 1994년 이 불상에 관해 괴소문이 떠돌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사고도 많았다. 구포역 열차전복,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유람선 화재등….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관저 뒤편의 미남석불을 치워버려 각종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석불은 전임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면서 원래 자리에서 10m쯤 올라간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던 것이었다.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자, 김영삼 대통령의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에게 사실을 설명하며 불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정면과 옆면 /문화재청 제공

 

사연이 어떠하든, 문화재는 문화재다. 문화재청은 이 석불을 보물로 지정예고하면서 그동안 미진했던 문화재적 가치를 규명하고 제도적으로 보호‧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국민과 문화재 정보를 공유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불상은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중대석과 하대석이 손실되었지만 다른 부분은 큰 손상 없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을 걸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습으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형태이며,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적 특징과 조각적인 양감이 풍부하여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위상을 한층 높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사각형 대좌는 동시기 불상 중에는 사례가 거의 없어 독창적인 면모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 편단우견(偏袒右肩): 한쪽 어깨 위에 법의(法依)를 걸치고 다른 쪽 어깨는 드러낸 모습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을 무릎 위에 얹고 오른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으로,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귀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에 이른 경지를 상징

 

보물 지정 검토에 앞서 실시한 과학조사에서 석조여래좌상의 석재가 남산과 경주 이거사지(경주 도지동에 있는 신라시대 절터) 등에 분포한 경주지역 암질로 구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다만, 원래 있었던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앞으로 복원과 원위치 확인을 위한 더 심도 있는 조사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한편 경주지역에서는 청와대에 있는 불상을 고향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은 문화재의 학술적·예술적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보물 지정을 예고한 것이라면서 불상 이전 문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원래 위치를 찾아내 복원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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