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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기사승인 2018.01.31  12: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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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팜 레스토랑에서의 추억…사소한 간극을 좀더 확인했더라면…

 

[조병수 프리랜서] 2002년 11월 중순, W금융그룹 부회장 및 계열사 사장단이 해외선진금융기관 벤치마킹을 한다며 대거 뉴욕을 방문하였다. 뉴욕 일원에 있는 IBM 호손(Hawthorne) 연구소, Citi그룹 등에서 IT, 고객관계관리(CRM) 및 고객자산관리 체계와 현황에 대한 강의와 토론 등이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바로 그 둘째 날 저녁에 은행장을 모시고 현지 소속장들과 만찬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짧은 체류기간에 뉴욕의 정취도 즐기며 담소를 나누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다가,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는 "팜(The Palm)"이란 식당으로 정했다. 많은 손님들로 붐비고 좀 왁자지껄한 분위기이지만, 이층 한 켠에 조그만 방도 있으니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세컨드애비뉴 44가와 45가 사이에 있는 그 식당은 이태리 이민자 둘이서 1926년에 개점하여 대(代)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데, 스테이크와 랍스터, 전통이태리 요리와 함께 식당내부 벽면을 가득 채운 각계 저명인사들의 캐리커쳐 (caricatures)가 유명한 곳이다.

넘쳐나는 손님 때문에 바로 길 건너 편에 "The Palm Too"라는 상호로 식당을 운영하는 바람에, 때때로 예약이 엇갈려서 길 건너 왔다 갔다 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일정을 챙기는 직원에게 "팜 레스토랑의 이층에 조용한 방이 있으니 그곳에 예약을 해두라. 맞은 편에 있는 팜투(The Palm Too)가 아니라 팜(The Palm)이고, 이층에 올라가면 왼쪽에 조그만 방이 있다"고 일러주었다.

 

▲ The Palm restaurant(837 2nd Avenue, NY) 2층 벽면의 캐리커쳐 /사진=조병수

 

간담회가 있는 날, 고객관리프로그램 관련 회사와 금융기관들을 거쳐서 코네티컷 주의 스탬퍼드 (Stamford)에 있는 Citi은행 사무실에서 오후 6시까지 회의를 하고는, 진눈깨비 흩날리는 고속도로를 달려서 뉴욕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은행장이 “오늘 모두다 모이면 제대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는 말씀을 꺼냈다. 그 당시 일부 현지영업점들에서 이런저런 잡음들이 들려오던 즈음이라 대충 무슨 말씀일지 짐작이 갔다. 늘 온화하게 이야기하던 톤과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 그 뜻을 내 비치길래, '저녁 행사장소로 조용한 방을 예약해놓길 잘했다' 싶었다.

식당에 도착하니까, 문 앞에 나와있던 현지법인장이 다가서며 귓속말로 나직하게 상황을 전해왔다.

"조금 전에 와보니 이층의 우리테이블이 다른 손님들과 같이 앉게 되어있더라. 우리만 쓰자고 해도 예약손님이 많아서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앉을 테이블만 한쪽으로 몰아 놓았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이층으로 올라가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 별실에는 다른 손님들로 가득차있고, 이층 홀 한 켠에 기억(ㄱ)자 형태로 길게 펼쳐진 테이블에 우리 임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 앞으로 놓여진 테이블들에는 파란 눈의 손님들이 흥미로운 눈길로 이쪽을 흘낏거리며 식사를 하고 있고···.

이건 아니었다. 이럴 수가 없었다. ‘저 옆의 조그만 방으로 따로 예약을 해두라고 했었는데···.’

보통 중요행사가 있으면 예약장소나 현장을 직접 확인하지만, 그 즈음에는 잠시 몸을 빼낼 짬이 없을 정도로 일들이 몰렸다. 그래서 직원에게 부탁하고 "그대로 예약이 되었다"는 확인까지 받았었다. 그런데, 지역 내 부서장들까지 불러다 놓고, 막상 은행장을 모시고 행사장에 도착해보니까 내가 계획했던 공간이 아니었으니···.

예정에 없던 참석자가 갑자기 몇 명 늘어나서 그랬는지, 예약에 문제가 있었는지 그 이유를 따져보기에도 늦었기에,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준비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참석자들이야 이런 이색적인 분위기의 식당을 예약한 줄로만 알겠지만, 일정을 주관하던 책임자로서는 한번 더 직접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더구나 “오늘은 좀 엄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벼르던 은행장을 생각하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속이 타 들어갔다. 우리 테이블 앞쪽으로 다른 손님들도 가까이 앉아 있는 터라 깊이 있은 이야기를 나눌 형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아무런 내색을 않고 웃으면서 식사를 하는 은행장을 보면서 송구해서 애를 먹었다. 날벼락 같은 엄한 질책이 쏟아졌을 상황을 짐작조차 못하는 참석자들이 은행장 앞에서 온갖 미소와 함께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날 일정을 끝내고 헤어질 때, "하시고자 했던 말씀을 할 수 없는 여건이 되었음"을 정중히 사과 드렸을 때도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내심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해서 조금은 불편하였을 것임에도 별다른 말씀을 않는 그 절제와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정도야···’라며 마지막 확인을 소홀히 한 그 사소한 간극(間隙)이, 생각지도 못하던 파장(波長)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일깨워 준 경우이다. 물론 그 소홀함 덕분에 ‘해외에서 은행장으로부터 야단맞을 기회(?)’가 없어진 여러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말이다.

 

인터넷 자료를 뒤적이다가, 그 팜 본포(837 2nd Avenue, NY)는 “100년된 건물의 유지보수에 따른 문제점들 때문에 2015년에 매각되고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맞은편 The Palm Too나 미국 내 다른 지역들과 멕시코 등지에도 진출한 The Palm 식당들은 여전하겠지만, 아쉽게도 그 본포(本鋪)의 벽면을 장식하던 캐리커쳐들은 사진과 비디오로만 보관된다고 한다.

지난 날 그곳의 푸짐한 요리와 특색 있는 분위기에 이끌려서 들락거릴 때 만들어진 나의 이야기들도 세월 속으로 아련히 흘러간다. 모든 일에 완벽 하려고 노력하던 시절에 뜻하던 대로 되지 않는 그 불완전함과 소홀함에 속상해하던 일들도 이제는 어느덧 자잘한 에피소드에 불과해졌다.

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의 일화들을 되새기다 보니, 결코 완전무결할 수 없는 우리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항로의 순간순간마다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들에 감사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조병수 프리랜서 bscho5@hotmail.com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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