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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제국의 몰락③…계급질서의 붕괴?

기사승인 2018.01.24  19: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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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 원인으로 기상이변설, 사회이완설 등…제국주의자에 의해 부활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더 큰 궁궐을 짓고 피라미드보다 웅대한 묘당을 건설하며 미켈란젤로만큼 뛰어난 조각을 창조한 거대한 앙코르 제국은 1431년 멸망한 후 캄보디아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지금 인도차이나라고 불리는 지역의 대부분, 즉 태국, 버마, 라오스, 베트남 남부를 지배하고,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한 몽골마저 공격을 꺼린 이 나라는 어떻게 멸망했을까.

열대림의 아름드리 뿌리가 건축물 곳곳을 파고들어가 뱀처럼 칭칭 감도록 앙코르 유적은 19세기 중엽 유럽인들이 발견할 때까지 400년 이상 방치되었다. 캄보디아의 역사 기록물, 앙코르 제국을 멸한 태국의 역사서에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없다. 서양의 학자들이 이 의문에 도전했다. 수많은 학설이 제기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앙코르 제국의 몰락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 서기 900년의 앙코르 왕국 영토와 1809년 샴(태국) 영토 /위키피디아

 

공식적으로는 앙코르 제국을 멸망시킨 팩트는 1431년 태국 지역에서 발원한 아유타야 왕국의 침입이다.

현재 태국의 샴(Siam) 지역은 오랫동안 앙코르 제국의 속국이었다. 앙코르 제국 말기에 샴 지역 남쪽에 수코타이 왕조가, 북쪽엔 치엥마이 왕조가 들어섰다가 1350년 아유타야 왕조가 신흥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아유타야 왕국은 1430~1431년 앙코르 제국을 침공해 점령했다. 아유타야의 왕 파라마라자는 앙코르의 다르마쇼카왕을 죽이고 자신의 아들 인드라파트를 점령지 통치자로 세웠다. 그리고 600년 역사의 앙코르 문화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 1,000여개의 사원, 민속무용등을 압살하고, 대신과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앙코르의 왕자 폰하 야트는 잔여 세력을 이끌고 점령자인 인드라파트를 죽이고 나라를 제건했다. 하지만 도성의 수리시설은 파괴되고 적(태국)의 반격을 맞아 도성을 포기하고 톤레삽 호수와 메콩강이 만나는 프놈으로 도읍을 이전했다. 이후 왕도에 남아있던 옛 앙코르족과 새 왕조와의 관계는 끊어진다. 도성을 포기한 캄보디아의 새 왕조는 밀림의 부족장으로 명맥을 유지하지만, 더 이상 거대한 앙코르 제국의 주인은 아니었다.

캄보디아 역사에서 이 기간을 암흑기(dark age)라 부른다.

 

▲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옥 /사진=김인영

 

그러면 앙코르 제국은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걸었을까. 타이족이 그토록 강력했던 것일까.

인도차이나에서 타이족의 역사는 짧다. 이 족속은 중국 윈난(雲南)성에서 발원해 중국 한족이 팽창하면서 10세기 이후 메콩강을 따라 서서히 남하해 인도차이나 반도로 이주했다. 12세기에 건축된 앙코르 와트 회랑 부조물에 타이인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앙코르인들은 타이족을 야만인으로 묘사했다. 부조물에서 타이족 병사들은 규율이 없어 보인다. 발을 맞추지도 않고 병사들끼리 히히덕거리기도 한다. 들고 있는 창의 각도도 엉망이고, 입은 옷도 아랫부분이 차마같이 넓게 퍼져 있어 전투에 효율성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얕잡아 보던 타이인들에게 앙코르인들은 문화적 우월감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제국을 넘겨주었다. 신흥 아유타야 왕국이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한 것은 앙코르 왕조가 급격히 쇠퇴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에 공감한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몇가지 견해를 인용해 보자.

 

① 기상이변설

2012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진은 앙코르 제국의 몰락이 장기간 지속된 가뭄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이 지역 나무들의 나이테를 연구한 결과 가뭄이 오래 지속되고, 그 사이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기후 이변을 겪었음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최대 저수지인 웨스트 바레이 터에서 앙코르 왕국이 멸망할 무렵에 이 지역 강우량이 이전에 비해 10분의1로 줄어 들었다는 증거를 찾아 냈다. 웨스트 바레이 저수지는매우 복잡한 수로와 해자, 둑이 왕도와 복잡하게 이어져 있었다. 앙코르인들은 여름 우기에 내린 빗물을 저수지에 저장했다가 가뭄이 들면 논 물로 이용했다.

그러나 가뭄으로 저수량과 퇴적물이 줄어들면서 저수지 주변 생태계도 크게 바뀌어 호수 밑바닥에 살던 조류와 부유식물이 기승을 부리게 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왕조의 방대한 물 관리 체계도 급격한 기후 변화를 감당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② 계급질서의 붕괴

앙코르 톰을 만든 자야바르만 7세는 대승불교를 도입했다. 대승불교는 피지배계층과 유리되었다.

왕은 자신이 부처라고 주장하고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대승불교를 통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원을 짓고 왕궁을 건설했다. 백성들은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백성들에겐 대승불교란 피곤한 이데올로기였다. 피지배계급은 조용하게 명상하며 스스로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소승불교가 더 매력적이었다. 왕은 인자한 모습의 관음보살상을 곳곳에 세웠지만, 피지배계층의 신앙심을 얻는데 실패했다. 대승불교는 당시 동남아시아의 주류 종교는 아니었다. 왕은 중국, 고려 등지에서 번성하는 이질적인 외국의 종교를 끌고와 결국엔 국민들과 유리되었다.

지배계층은 고도의 문화를 구가했지만 피지배계층은 노역과 빈곤에 시달렸다. 그들에겐 외부의 침략이 있을 때 앙코르 왕조를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없었다.

강제 노동을 강조하는 사회는 어느날 갑자기 무너질수 있다. 만리장성을 쌓았던 중국의 진(秦)나라, 대운하를 뚫은 수(隋)나라도 반역자의 반란에 순식간에 멸망했다. 피라미드를 세운 이집트도 문명을 송두리째 잃었다.

 

▲ 앙코르 와트가 잊혀진 사이에 건축물을 휘감고 자란 열대림. /사진=김인영

 

인구 100만의 거대 도시문화를 형성했던 앙코르는 건국한지 100년도 되지 않은 야만인 타이족의 나라에 쉽게 멸망했다. 외부의 적이 강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부가 썩을대로 썩었고, 무너질대로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다. 왕조사의 단순한 궁정반란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저 거대한 무덤과 왕도(王都), 그 자체가 몰락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바벨탑의 저주라 할까. 대규모 건축물을 건설하기 위해 백성과 타민족을 노예처럼 부렸고,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 방대한 관료집단을 조직해야 했다. 관료집단은 부패하고, 지배계층의 호화로움은 극에 달했다. 도성 중앙에 급탑을 쌓고 금다리를 놓았다. 금불상을 만들어 우상화했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것이다.

 

▲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태국 영토에서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프랑스령으로 바뀐다. /위키피디아

 

제국은 변경에서 무너진다. 로마제국은 변경의 야만 게르만족의 침공에 무너졌고, 중국의 한족 국가도 변경의 이질적 민족에 의해 몰락했다.

타이족이 지배한후 앙코르의 크메르족은 자신들의 문화를 버렸다. 이민족의 침략에 지배 계급이 몰락하자 피지배자들은 고된 노동, 이질적 외래문화와의 단절을 더 바랬을 것이다. 더 이상 대규모 사원이나 궁궐을 지을 필요가 없게 되었고, 외래종교인 대승불교 대신에 조용히 명상하고 부드러운 자신들의 소승불교에 빠져들 수 있었다. 앙코르 문화는 민중들로부터도 잊혀졌다.

크메르인들은 자기 제국의 위엄 있는 문화보다는 타이족이 제공하는 문화에 빠져들었다. 나라를 잃으면 이토록 완벽하게 자기문화를 잊을수 있을까. 앙코르 와트는 크메르인들의 기옥 속에 묻혀졌다. 캄보디아라는 왕국은 400년후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이 인도차이나 경략 차원에서 복원되었고, 프랑스가 태국에서 씨엔립을 캄보디아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후 제국주의 역사학자, 인류학자, 문화운동가에 의해 앙코르의 유물들은 다시 인류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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