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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제국의 몰락②…여성 우위의 사회

기사승인 2018.01.23  17: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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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에게 처녀성 제거 의식 치러…왕위 계승, 상거래도 모계사회 유습

 

앙코르 와트를 유럽에 널리 소개한 앙리 무오에 앞서 1850년 서양인으로는 처음으로 그곳을 방문한 사람은 프랑스의 샤롤 에밀 부유보(Charles-Émile Bouillevaux) 신부였다. 그는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웅대한 건축물을 보고 놀랐다. 앙리 무오는 그의 기행문에 자극을 받아 앙코르 와트에 대한 꿈을 키웠다.

▲ 주달관(周達觀) /씨엠립 민속문화촌

저렇게 웅대한 건축물을 지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았을 때 만큼이나 캄보디아 씨엠립의 앙코르 와트는 앙코르 제국인들의 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준다. 하지만 캄보디아 역사에 대한 기록은 건축물에 새겨진 비문이나 부조 정도밖에 없다. 그 비문에는 왕조에 대한 찬양이 주를 이루고 있어 생활상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유일하게 앙코르 제국의 생활을 가늠케 하는 것은 중국인들의 기록이다. 특히 원(元)나라 사신으로 씨엠립을 다녀간후 정리한 주달관(周達觀, 1266년–1346년)의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는 앙코르 백성들의 풍습을 자세하게 그려냈다.

 

▲ 씨엠립의 캄보디아 민속문화촌에서 공연 모습 /사진=김인영

 

도올 김용옥은 기행책자 「앙코르와트 월남 가다」에서 주달관의 「진랍풍토기」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으로 ‘실녀’(室女)라는 장(章)을 들었다. 실녀는 처녀(處女), 즉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동의어다.

주달관은 이렇게 정리했다.

 

여자 아이를 출산하면 그 부모는 반드시 장래의 행복을 기원하며 ‘너는 큰 부자가 되어 천, 백의 남자에게 시집가라’고 말한다. 부자집 여자는 일곱 살부터 아홉 살, 가난한 집의 여자는 열한 살이 되면 승려와 도사에게 생명을 맡기고 처녀성을 없애는 절차를 밟는데, 이를 진담(陣毯)이라고 한다.

 

여기서 부모가 딸의 장래를 기원하며 하는 ‘천, 백의 남자에게 시집가라’는 말의 원문은 ‘將來嫁千百箇丈夫’이다. 가(嫁)는 ‘시집가다’는 한자인데, 어찌 한 여자가 천번, 백번을 결혼할수 있겠는가. 김용옥은 이를 “수천, 수백의 남자의 품에 안기기를”이라고 해석했다. 즉 ‘자유롭게 남자를 만나 성 관계를 맺으라’는 뜻이다.

김용옥은 부모가 딸에게 많은 남자와 성관계를 맺으라고 권하는 것은 여성의 생산성에 대한 예찬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앙코르 여성이 남성과 하등의 차이가 없이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녀(질녀)는 부자집의 경우 7~9살, 가난한 집은 11살에 진담이라는 예식을 취한다. 진담은 처녀성을 제거하는 통과의례로, 처녀를 의미하는 ‘촘통’(chomton)이란 말을 중국어로 옮긴 것이다.

주달관은 진담 의식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자세히도 관찰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해 질 무렵이면 양산을 들고 북을 치면서 사원에서 승려를 맞아하여 집으로 모셔온다. 갖가지 모양을 수놓은 견직물로 천막에 묶은 다음, 한 쪽 천막에는 여자 아이를 앉히고 다른 쪽 천막에는 승려를 앉게 한다. 이때 승려가 여자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는데 알수 없다.

떠들썩한 음악이 사방에 울려 퍼지고 진담을 위해 통행금지도 해제된다. 시간이 지나면 승려는 여자와 함께 침실로 들어가 자신의 손으로 여자의 처녀성을 제거한 다음, 그것을 술에 넣는다고 들었다.

어떤 집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부모, 친척, 주위 사람들에게 얼굴에 묻히기도 하고, 어떤 집에서는 입으로 맛을 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승려가 여자와 성교를 한다고 말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도 한다.

 

진담은 어린 소녀의 처녀막을 제거하는 의식이다. 앙코르 왕국은 불교와 힌두교를 동시에 받아들인 나라이므로, 승려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 승려가 진담 의례에 나가 여자아이의 처녀막을 제거하는 것이다.

 

주달관에 앞서 중국에서 나온 「도이잡지」(島夷雜誌)라는 책에 진담에 관한 설명이 있다.

 

“결혼을 한 후 남자는 여자 집에 가서 산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풍습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딸을 낳아 9세에 이르면 스님을 청해 송경(誦經)하고 바라문 법(梵法)에 따른 의식을 치른다. 그 의식은 승려가 손가락으로 처녀의 음문 구멍을 휘저어 처녀막을 파손하여, 거기서 흐르는 피를 취하여 그 처녀의 이마에 바른다. 뿐 아니라 그 처녀 엄마의 이마에도 피를 취해 도장을 찍는다. 이것을 리시(利市)라 부른다. (김용옥 번역)

(每嫁娶 則男歸女舍 最可笑一事 國人生女至九歲 即請僧誦經作梵法 以手指挑損童身 取其紅點女額 其母亦用點額 喚爲利市)

 

▲ 자야바르만 7세 /씨엠립 민속문화촌

「도이잡지」의 리시(利市)가 주달관이 말하는 진담(陣毯)이다. 앙코르 왕국에서 처녀들에게 행하는 진담 의례는 유태인들이 남자아이에게 하는 할례 의식에 비유된다. 하지만 유태인의 할례의식은 남자아이에게 적용되지만, 앙코르 족은 여자아이에게 의식을 치렀다. 즉 어려서 처녀성을 제거해 여성으로 하여금 정조 관념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도록 한 것이다.

이는 모계 사회의 전통이라고 볼수 있다. 즉 앙코르 왕국에서는 여성이 우월한 입장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주달관의 기행문에서 여성들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는 이 특이한 나라의 풍습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성관계도 여성이 주도했다. 주달관의 진랍풍토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부인들은 출산한 다음날 어린애를 옷으로 싼 다음, 집에서 나와 호수에 몸을 씻었는데, 아주 이상한 행동이다. 또 여인들은 음란한 얘기를 많이 주고 받았다. 출산후 하루만 지나면 벌써 남편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만약 남편이 이를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여자로부터 버림받을수도 있다.

 

앙코르 제국의 상거래도 여자들이 관장했다. 중국인들은 이 제국과 무역을 하려면 현지 여자를 부인으로 두었다고 주달관은 설명했다.

 

캄보디아에서 무역 거래는 여성의 몫이다. 이같은 이유로 중국인들이 캄보디아에 도착하면 반드시 한 여인을 맞이하는데, 그것은 무역과 거래에서 커다란 자산인 여인들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앙코르 왕조의 정통성은 어머니, 누이, 숙모등 모계의 혈통을 이어 받는다. 캄보디아 건국신화에 인도 승려 카운단야가 달을 토템으로 숭배하는 소아라는 캄보디아 여인과 결혼해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달은 여성을 의미한다. 주달관도 자신이 도착했을 때 왕위계승 전쟁을 설명하면서 딸(공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서술했다.

 

새로운 국왕(인드라바르만 3세)은 죽은 왕인 자야바르만 8세의 맏사위로서 병권을 담당하는 직위에 있었다. 국왕은 장인이 죽자 선왕의 딸이면서 자신의 아내가 된 부인으로부터 왕권을 상징하는 금으로 된 보검을 훔쳐 받았다. 이 때문에 선왕의 아들이 왕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주달관이 설명한 앙코르 왕조는 야만국이다. 식인 풍습이 있었다. 그 대목을 인용해 보자.

 

중국 달력으로 8월이 되면 쓸개 수집이 시작된다. 참파의 왕이 매년 들어와서 한 항아리에 천여 개에 달하는 사람의 쓸개를 채집했다고 한다. 밤이 되면 사람들에게 명령해 이곳저곳으로 간다. 성안은 물론이고 촌락에 이르기까지 밤길을 걷는 자가 있으면 천으로 머리를 감싼 다음에 밧줄로 묶고 작은 칼로 오른 쪽에서 찔러서 쓸개를 꺼낸다. 필요한 수만큼 모으면 이것을 참파왕에게 보낸다.

 

1850년 서양인으로서는 프랑스의 샤를 에밀 부유보 신부가 방문했을 때에도 있었다고 한다.

 

▲ 주달관의 행로 /그래픽=김인영
▲ 앙코르 와트 모습 /사진=김인영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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