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광풍, 380년전 튤립 파동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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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광풍, 380년전 튤립 파동과 닮았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2.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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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투자, 제한된 수량에 투기수요 몰려…규제 강화 움직임

 

그는 일본인일까. 남성일까, 여성일까. 몇 살쯤 되었을까. 온갖 의혹과 추측을 만들어내며 전세계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 인물은 바로 나카모토 사토시(Satoshi Nakamoto)라는 사람이다. 이름을 보면 中本哲史라는 일본인으로 추정된다. 2008년 10월 유일의 초강대국임을 자부하던 미국이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하고 주식시장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거덜이 나 있을 때,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사람이 비트코인(bitcoin)에 관한 논문을 제출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비트코인의 가치는 1,700억 달러, 미국 최대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수준으로 커졌다. 1비트코인당 1만 달러를 넘은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1년간 상승폭은 18배. 이렇게 많은 이문을 남긴 장사는 인류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JP모건-체이스의 재미 다이먼(Jamie Dimon) 회장은 비트코인 광풍을 '사기'(fraud)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디지털 매체인 와이어드(Wired)는 비트코인 창시자인 정체 모를 나카모토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5위로 선정했다. 거의 김정은 수준으로 규정한 것이다.

 

▲ /그래픽=김인영

 

하지만 비트코인은 열광적인 신도를 만들어냈다. 중앙은행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의 여파로 미국의 내로라는 은행들이 줄줄이 부도의 위험에 처하고 정부가 예산에서 돈을 빼내 은행을 살리고,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0%까지 내리는 상황에서 무정부 상태의 화폐, 즉 암호화폐가 등장한 것이다. 미래학자들, 자유주의자들, 컴퓨터 괴짜들, 집단지성을 신봉하는 무리들이 비트코인 예찬론에 가세했다.

여기에 검은 돈이 참여했다. 비트코인이 통화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 중앙은행과 정부의 지급보증이 없다. 따라서 규제장치가 없다. 비자금과 같은 검은 돈이 숨기 좋은 장소다. 북한이 비트코인등 암호통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북한의 대외자금줄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의 암호망에 들어가 거래를 하면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비트코인 시장은 400년전 네덜란드의 튜립파동을 닮았다는 스위스 은행인 UBS의 수석이코노미스트 폴 도노반(Paul Donovan)은 최근 비트코인 시장 상황을 1637년 네덜란드의 튜립 파동, 1차 대전 직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17세기초 오스만 투르크가 아시아 대륙에서 자생하는 튤립을 유럽에 소개하자, 네덜란드인들은 도도한 자태에 아름다움을 갖춘 튤립의 매력에 푹 빠졌다. 돈 많은 식물 애호가들은 비싼 가격으로 튤립을 사들였다. 튤립은 재배에는 한계가 있었다. 씨앗으로 재배하는 방법은 꽃을 피우는데 3~7년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뿌리로 이식시키면 그해에 꽃을 피울수 있다. 따라서 뿌리(구근)이 비싼 가격으로 팔렸다.

여기에 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634년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튤립 뿌리 거래에 참여했다. 튤립 뿌리는 양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개수가 한정되었고, 수요가 몰리자 가격이 급등했다. 튤립 뿌리를 사면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돌면서 영주는 물론 장인, 농민들도 투기에 참여했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품종은 보라색과 흰색 줄무늬를 가진 ‘센페이 아우구스투스’( Semper Augustus)였다. 영원한 황제라는 뜻이다. 뿌리 하나가 8만7,000유로(1억1,000만원)에 달했다.

거래는 정식 증권거래소에서 이뤄지지 않고 술집에서 이뤄졌다. 구근이 모자라자 선물거래라는 당시로는 신개념의 금융거래가 도입되었다. 거래 용지 한 장이면 즉석에서 거래되었다.

그러다가 1637년 2월 3일 갑작스럽게 튤립 거래가 폭락했다. 어음은 부도나고 3,000여명의 채무자들이 지급불능 상태가 되었다.

 

▲ 네덜란드 튤립 파동을 풍자한 그림, 꽃의 신 플로라가 환전상, 술꾼과 함께 차를 타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뒤를 일확천금을 노리는 직조공들이 따르고 있다. /위키피디아

 

비트코인도 비슷한 상황이다.

첫째, 양이 제한되어 있다.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암호해독은 매우 복잡한데, 통상 PC 한 대가 5년간 쉬지 않고 암호해독을 했을 때 25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총 2,100만 비트코인까지만 채굴될 수 있도록 코딩되어 있으며, 2015년을 기준으로 1,400만 비트코인이 채굴되어있는 상태다. 통화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요가 몰리면 급등한다.

돈 있는 투기자들이 올 하반기에 비트코인 시장에 많이 뛰어들었다. 오토노머스 넥스트(Autonomous NEXT)라는 투자조사기관에 따르면, 부자들을 고객으로 하는 헤지펀드의 경우 8월말 55곳이 암호화폐에 투자했는데, 지난주엔 169곳으로 급팽창했다. 미국과 영국의 투자회사 창구에는 수만개의 계좌들이 신설되고 있으며, 골드만삭스, JP모건도 계좌 개설에 나섰다. 회장은 투기라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은행은 열광적인 투자 자금 모집에 나서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맹신이다. 튤립이 갖는 재화적 가치보다는 뿌리를 사면 돈이 된다는 맹목성이 비트코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주식은 배당이 있어 주가와의 비교 대상이 되지만, 비트코인은 그 자체에 수익성이 없다. 그럼에도 미래의 통화라는 집단적 맹신이 투기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규제의 목소리도 높다. 중앙은행과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거부할 경우 가치를 발휘할수 없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도 비트코인이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되려면 정부가 규제와 감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는 비트코인 거래소를 폐쇄했다. 미국 연준(Fed)의 랜덜 퀄스(Randal Quarles) 이사는 “디지털 통화도 틈새상품”이라며, “위기 시 가치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경고성 발언을 했다.

결국 비트코인 광풍이 사기라면 누가 돈을 벌었을까. 미국의 경제잡지 머니(Money)는 비트코인 창시자인 나카모토는 58억 달러의 어마어마한 돈방식을 깔고 앉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우리돈으로 계산하면 6조원쯤 된다.

비트코인 거품이 꺼지면 세계경제에는 타격이 올까. 오지 않을 것이다. 투기자들끼리 먹은자와 토하는자가 생길 것이다. 380년전 튤립 거품이 꺼진후 네덜란드 경제가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다만 네덜란드의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절제와 금욕을 강조하는 칼빈주의가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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