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균의 역사여행⑦…순망치한(脣亡齒寒)<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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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균의 역사여행⑦…순망치한(脣亡齒寒)<2>
  • 손봉균
  • 승인 2017.11.1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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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글에서는 중국 춘추시대의 큰 나라인 진(晉)나라가 작은 나라인 괵나라와 우나라를 망하게 할 때 사용한 방법이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망하면 이가 시리다)의 원리였다고 설명하였다. 이 순망치한의 원리와 방법은 모든 나라가 외교에서 과거뿐 만 아니라 현재도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전국시대의 3대 강국이었던 진(秦), 초(楚), 제(齊)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자 한다>

 

▲ 손봉균씨

 

중국의 전국시대, 기원전 300년경, 진 혜문왕, 제 민왕, 초 회왕 시절.

진 효공이 상앙을 등용하여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결과, 당시에는 진(秦)나라가 전국 7웅(진, 초, 연, 제, 한, 조, 위)중에서도 가장 강한 나라가 되어 있었으며, 원래부터 큰 나라였던 남방의 초(楚)나라와 산동지방의 제(齊)나라가 강대국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진(秦)나라의 혜문왕은 점점 천하에 위세를 떨치는 제(齊)나라와 남방 강국인 초(楚)나라의 사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떼어 놓아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진 혜문왕이 당시 정승이던 장의(張儀)와 상의한다.

"제나라와 초나라가 우호를 맺고 있는 한 우리 진나라는 잠시도 안심할 수 없소. 이 일을 장차 어찌하면 좋겠소?"

장의가 대답한다.

"신이 남쪽 초나라로 가서 이 세치 혓바닥을 놀려 반드시 초나라와 제나라 사이를 떼어 놓겠습니다"

진 혜문왕이 동의하여 장의는 초나라로 갔다.

 

초나라에 도착한 장의는 초 회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근상을 먼저 찾아갔다. 초 회왕은 근상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었다. 장의는 근상에게 많은 뇌물을 바치고 앞날에 관한 일을 부탁했다.

연후에 장의는 궁으로 들어가 초 회왕을 뵈었다. 장의가 초 회왕에게 이번에 온 목적을 아뢰었다.

"신이 이번에 온 것은 진나라와 초나라, 두 나라의 우호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초회왕이 말하였다.

"과인도 진나라와 친선하고 싶은 생각이 어찌 없겠소. 다만 진나라가 늘 침략을 일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호를 청하지 못 하고 있는 중이요."

장의가 대답한다.

오늘 날 세상에 7국이 있다지만 강대국이란 초(楚), 제(齊), 진(秦) 세 나라 뿐 입니다. 우리 진나라는 지금이라도 동쪽 제나라와 손을 잡을려면 잡을 수 있고, 남쪽 초나라와도 손을 잡을려면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하건만 우리나라 왕께서는 제나라 보다는 초나라와 친선하고 싶은 생각이 많습니다. 제나라는 우리 진나라와 혼인한 사이이건만 늘 우리 진나라를 배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왕은 초나라와 친선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대왕께서 제나라와 절교하시고 우리 진나라와 손만 잡아 주신다면 우리는 옛날에 상군(상앙을 말한다)이 귀국(초나라)으로부터 뺏은 땅 6백리를 다 대왕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왕녀를 보내어 대왕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진, 초 두나라가 혼인하고, 모든 근심을 함께 막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초회왕은 진나라가 상어 땅 6백리를 준다는 말에 기뻣다. 그리고 그 말은 들은 모든 신하는 상어 땅을 얻게 된 데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찬성했다.

 

이 때 객경 벼슬에 있는 진진이라는 신하가 앞으로 나아가 초회왕에게 아뢴다.

"진나라와 우호를 맺는 것은 옳치 못한 일입니다. 신의 생각에 의하면 이 일은 기뻐 할 일이 아니라 도리어 슬퍼할 일입니다."

초 회왕이 그 이유를 물었다.

"군사를 쓰지 않고 6백리의 땅을 얻게 되었고, 모든 신하가 다 기뻐하는 데 어째서 그대만 반대 하느냐?"

신하인 진진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진나라가 우리를 중시하는 이유는 우리가 제나라와 우호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나라와 절교하면 우리는 고립상태에 빠집니다. 일단 우리나라가 고립상태에 놓이기만 하면 진나라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돌변할 것입니다. 즉, 진나라는 우리 초나라를 중요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약속한 6백리의 땅을 결코 대왕께 바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대왕은 지금 장의의 속임수에 속고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제나라와 절교하면 여러 가지 낭패가 생깁니다. 첫째는 장의가 대왕을 속이고 땅을 주지 않을 것이며, 둘째는 제나라가 우리를 원망하고 도리어 진나라와 손을 잡을 것이며, 셋째는 오래지 않아 제나라와 진나라가 힘을 합쳐 우리 초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은 이 일을 기뻐하지 않고 슬퍼 합니다. 대왕은 장의가 진나라로 돌아 갈 때 사신을 딸려 보냅시오. 사신이 진나라에 가서 과연 상어 땅 6백리를 받아 오거든 그 때에 제나라와 절교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 때 다른 신하인 대부 굴평이 진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찬성하였다. 그러나 장의의 부탁을 받은 간신 근상이 나서서 말한다. "우리가 제나라와 절교하지 않는다면 진나라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땅을 주겠습니까? 그러니 대왕은 진나라를 믿으십시오"

초 회왕은 근상의 말대로 하기로 하고 진진의 건의를 묵살한다. 이튿날 초 회왕은 진나라와 초나라 양국의 수교에 공이 크다고 하여 장의에게 많은 황금과 좋은 말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초 회왕이 분부한다. "사람을 북관 수장에게 보내어 이 후 제나라에서 오는 사신이 있거든 일체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여라. 그리고 봉후축 장군은 장의를 따라 진나라에 가서 상어땅을 받아오라"고 지시하였다.

 

▲ /위키미디아

 

장의는 초나라 봉후축과 함께 초나라를 떠났다. 진나라 서울 함양에 가까웠을 때였다. 장의는 일부러 술이 취한 체하고 수레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장의가 상을 찌푸리며 엄살을 떤다.

"이거 발뼈가 부러졌나보다. 나는 급히 가서 우선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겠소. 천천히 오시오. 나는 먼저 실례하오" 하고는 와차(누워서 타는 차)를 타고 먼저 함양성으로 들어갔다. 장의는 자기 부중으로 가서 진 혜문왕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 내용은 자신은 병이 나서 궁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봉후축에게 관역에 머물게 하고 일체 만나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며칠 후 도착한 봉후축은 진 혜문왕을 뵈오러 궁으로 갔으나, 수문장들은 궁 안으로 봉후축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답답한 봉후축은 장의를 찾아 갔으나 장의는 병이 대단하다면서 봉후축을 만나주지 않았다. 이러는 동안에 함양에서 3개월을 허송했다.

 

마침내 봉후축은 진 혜문왕에게 글을 올렸다. 그 내용은 장의가 우리 초나라에 상어 땅 6백리를 준다고 했으니 속히 달라는 것이었다.

이튿날 진혜문왕이 답장을 보냈다. 그 내용에 하였으되,

‘만일 장의가 그런 약속을 했다면 과인은 반드시 그 약속을 실행하겠소. 그러나 과인은 초나라가 제나라와 절교했다는 정보를 아직 받지 못했소. 초나라가 약속을 실행하지 않는 데 과인만 약속을 실행할 순 없는 노릇이오. 좌우간 과인은 장의가 병이 속히 완쾌되어 그간 보고를 직접 듣기 전에는 그대 말을 믿을 수 없소’

봉후축은 다시 장의를 찾아 갔으나 장의는 병을 핑계로 만나주지 않았다. 난처해진 봉후축은 사람을 보내어 그간의 경과를 초 회왕에게 보고 하였다.

초 회왕이 진나라에서 보내온 봉후축의 보고를 받고 말한다.

‘그러니까 진나라는 우리에게 빨리 제나라와 절교하라는 것이구나. 그래야만 땅을 주겠다는 것이로군’

드디어 초 회왕이 용사 송유를 불러 들여 분부한다. "그대는 제나라 경계에 가서 제나라 경계를 지키고 있는 관리들을 향해 제왕에 대한 욕설을 실컷하고 돌아오너라"

이에 용사 송유는 초회왕이 시키는 데로 제민왕에 대한 욕설을 실컷하고 도망쳐 돌아왔다.

제 민왕은 초나라 장수가 경계에 와서 자기를 욕하고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고는 대로했다. "과인은 초나라의 무례한 욕설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다. 즉시 진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함께 초나라를 치자고 교섭하여라"

 

이리하여 제나라 사신이 진나라로 갔다. 진나라 정승 장의는 제나라에서 사신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속으로 ‘이제 내 계책대로 일이 맞아 들어가는 구나’ 하면서, 부하들에게 이제 병이 나았으니 궁에 들어가 봐야겠다고 하면서 궁으로 들어갔다.

장의는 궁으로 들어가다가 조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봉후축을 보았다. 장의가 일부러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봉후축에게 묻는다.

"장군은 어째서 땅을 받아가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머물고 계시오?"

봉휴축이 반가이 장의 앞으로 달려와서 사정한다.

"진왕은 장 정승의 말을 직접 들어보지 않고는 땅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이제 장 정승이 다 나은 듯 하니 어서 들어가서 왕께 아뢰고 상어 땅 6백리의 경계를 정해 주오"

장의가 대뜸 능청을 부린다.

"전날 초나라에 준다고 한 것은 내가 국록으로 받고 있는 사방 6리 가량의 고을이요. 내가 초나라에 직접 바치면 되는 일이요. 그러니 왕에게 요청할 필요가 없소."

봉후축이 놀라서 말한다.

"나는 우리나라 대왕으로부터 상어 땅 6백리를 받아오라는 분부를 받고 온 것이오. 6리 땅이란 듣느니 처음이요"

장의가 뻔뻔스레 대답한다.

​"그럴 리가 있소? 아마 초왕이 잘 못 들었겠지요. 진나라 땅은 모두가 백전고투해서 얻은 땅이요. 무수한 군사의 피를 흘려서 얻은 땅을 다른 나라에 내 줄 수 있으리요. 더구나 6백리의 넓은 땅을 주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요"

봉후축은 기가 막혔다. 그날로 봉후축은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돌아가서 사실대로 그간의 경과를 보고 했다. 보고를 받은 초왕은 대로했다.

"과연 장의는 반복무상한 소인놈이로구나. 우리나라를 속인 장의와 진나라를 칠 터이니 군사를 일으켜라."

 

객경 벼슬에 있는 진진이 다시 건의한다.

"이미 제나라와 절교까지 한 우리의 처지로서 진나라를 쳐도 이기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성 두개를 진나라에 주고 잘 교섭해서 진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쳐서 제나라 땅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장의에게 속은 초 회왕은 복수에 눈이 멀어 진진의 건의를 듣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로 쳐 들어갔다. 진 혜문왕은 위장을 대장으로 삼고 군사 10만명을 주어 초나라 군사를 막게 했다. 동시에 진나라는 사신을 제나라에 보내어 함께 초나라 군사를 치자고 기별했다. 이에 제민왕은 대장 광장에게 군사를 주어 진나라를 돕게 했다. 드디어 진, 제 연합군은 초나라 군사를 맞이해서 싸웠다.

초나라 군사는 싸울 때마다 패했다. 이 전쟁에서 대장 굴개를 포함하여 초나라 군사 8만명이 죽는 등 거의 전멸을 당했다. 이리하여 진, 제 연합군은 한중의 땅 6백리를 얻었다.

 

한편 한나라와 위나라는 초나라가 진.제 연합군에게 대패하였다는 정보를 들었다. 이에 한. 위 두 나라도 개미떼가 죽어가는 호랑이에게 덤벼들 듯이 초나라를 치려고 군사를 일으켰다.

초 회왕은 날마다 들어오는 이런 이롭지 못한 보고를 받고 크게 겁이 났다. 그래서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 지난 일을 사죄하고, 진진을 진나라에 보내 성 둘을 바치고 화평을 청했다. 즉 진나라를 섬기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화평이 성립되고, 진나라는 그 다음 단계의 외교정책을 밀고 나갔다. 소진이 만들어 놓은 합종정책, 즉 6개국이 합심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자는 합종정책을 하나하나 깨 나갔다. 왜냐하면 진나라가 가장 강하였기 때문에 6개국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진나라의 독주가 계속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의는 6개국의 각각의 국가가 진나라와 개별적으로 조약을 맺게 하는 일을 추진하였다. (이를 연형책이라고 한다)

초나라는 진. 제 연합군에게 패한 후 국력이 많이 소모되었다. 이 전쟁을 계기로 강한 진나라는 더욱 강해지고, 초나라는 국력이 약해져서 다시는 옛날의 영광을 찾지 못하고, 결국 진나라에 합병되었다. 결과적으로 초나라가 장의한테 속아서 제나라와 절교를 한 이 사건이 초나라를 약화시키고,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일을 도와 준 것이 되었다.

 

손봉균씨는
국토교통부에서 30년간 재직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행정고시 19회에 합격. 전 국토지리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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