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사랑③] 황제가 마시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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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사랑③] 황제가 마시던 차
  • 김송현 기자
  • 승인 2017.11.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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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중국의 한 전시회에 청(淸)나라 황제가 마시던 보이차가 공개됐다. 바이윈(白雲)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저우 차 박람회 및 자사(紫砂), 자기 등 공예품 전시회’에 전시된 이 보이차는 청나라 광서(光緖) 23년(1897년) 시기의 것이라고 한다.

110여년 만에 처음 세상에 공개된 이 보이차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이 보이차가 황색 소가죽으로 포장되어 있었으며, ‘억조풍호(亿兆豊號)’라고 쓰여진 봉인으로 밀봉됐다고 한다. 억조풍호라는 봉인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은 " 당시 관료와 조정대신에게 바쳐지던 찻잎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110여년의 세월 풍파 속에서도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에 대해서는 "수집가들이 방부 및 특수포장처리를 통해 잘 보존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 청 황제가 마신 것으로 알려진 ‘억조풍호(亿兆豊號)’ 보이차 /남곡 김중경 제공

 

이 차에 대해 보이차 전문가들은 황제가 마시는 고귀한 차였기 때문에 종이가 아닌 양피로 고급스럽게 포장했을 것으로 해석했다.

중국에서는 200년 되었다는 차를 들고와 감정해달라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2,000년 전 고분을 도굴하는 과정에서 도자기와 함게 출토되었다며 아마 2,000년 된 차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2,000년 전이면 대략 삼국지의 배경이 된 한(漢)나라 시대 아닌가.

삼국지에 보면 건흥 3년(225년) 봄 남만(南蠻)의 왕 맹획(孟獲)이 침략전을 일으키자 제갈량이 군사를 이끌고 정벌에 나선다. 여기서 유명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지략을 발휘해 남만의 항복을 받아내게 되지만 먼 원정길에 지친 병사들이 두통과 안질 등 풍토병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제갈량이 나뭇잎을 삶아 병사들에게 먹이자 풍토병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나뭇잎이 차 잎으로 밝혀져 오늘날 윈난(雲南) 지역에서는 제갈량을 차조(茶祖)로 숭앙하고 있다.

제갈량의 스토리에서 “잎을 삶아 먹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도 아직 긴압된 보이차는 없었음을 알수 있다.

 

당나라 함평 4年(863년) 번작(樊綽)이란 사람이 쓴 만서(蠻書)에서 윈난 지역의 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에 “산차(散茶)로 거두고 찻잎을 따는 방법이나 차를 만드는 방법은 없다”고 적혀 있다. 이 내용을 미루어 당나라 때도 역시 긴압된 보이차는 없었다고 할수 있다.

긴압(緊壓)이란 편리하게 운반하거나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차 잎에 수증기를 가한 다음 틀에 넣고 압착해 일정한 형태의 덩어리로 만들어 발효시킨 다음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긴압후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보관하는데, 평평하고 둥근 원형 모양을 병차(餠茶)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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