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떠난후⑩…미국 통상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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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떠난후⑩…미국 통상압력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1.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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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상무부, 포철 핫코일에 30% 관세 부과…미국 UPI 임직원들 노력으로 무산시켜

 

정명식-조말수의 신임경영진을 맞은 포철이 안에서는 세무조사를 받고 경영개혁을 단행하고 있을때, 밖에서는 미국 정부의 무역보복조치에 맞부닺쳐 싸워야 했다.

포철산 철강제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무역보복 조치는 박태준 회장시절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1993년 1월 27일 미국 상무부는 한국산 열연강판(핫코일)에 대해 마진율 30%의 덤핑 예비판정을 내렸다.

특히 이 열연강판은 포철의 미국현지법인이자 우리나라 최대 대미진출업체인 USS-포스코(UPI)로 가는 물량이 대부분이었다. 미국 상무부의 반덤핑 예비판정으로 UPI사가 1986년 설립 이래 최대의 경영위기를 맞았다.

UPI사는 포철과 미국 최대 철강메이커 US스틸이 자본금 4억 달러를 50대50으로 투자, 설립한 회사. 이 회사는 설립후 한국식 경영기법을 도입, 적자상태의 경영수지가 개선되어 가고 있는 도중에 합작 파트너인 US스틸이 낀 미국 철강업계가 수입선인 포철 제품에 반덤핑혐의를 걸고 넘어지면서 좌초 직전에 놓인 것이다.

UPI사의 레너드 추더리비츠 사장은 당시 미국언론을 통해 “UPI는 설립이래 줄곧 적자를 면치 못했다”며 “이번 철강제소에서 미국업체들이 승소하게 되면 결코 반전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UPI사의 경영위기는 크게 두가지. 값싼 포철의 핫코일을 들여올 수 없게 된 점과 한미양측의 합작파트너가 이번 통상마찰에서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는 것.

합작 당시 도산 직전이었던 공장이 그동안 경영수지를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은 값싸고 질 좋은 포철의 핫코일을 들여와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 미국 철강업계는 한국산 핫코일에 대한 덤핑 예비판정으로 포철산 핫코일은 30%의 관세를 물고 미국국경을 넘게 됐다.

예비판정에서 미국 철강업체들의 주장이 거의 수용됨에 따라 UPI는 도산할 수 밖에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

또 당시 제소에서 나타난 두 합작파트너의 팽팽한 견해 대립도 UPI의 경영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US스틸은 합작공장의 수입철강에 대해 직접적인 제소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외국산 철강재에 대한 덤핑제소과정에서 12개 미국의 제소업체에 포함돼 있다. US스틸로는 싫든 좋든 미국으로 유입되는 외국산 핫코일의 덤핑혐의를 물고늘어질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포철은 미국 철강업계의 제소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포철의 대미수출철강재 가운데 90%이상이 핫코일이고 그것도 대부분 UPI 공급물량.

UPI 공급분 핫코일의 가격은 포철과 US스틸의 합의에 따른 「프라이스 포뮬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가격은 미국내 가격과 한국의 대미수출가격을 요소로 산출되며, 이 가격은 지난 1986년 합작추진당시 볼드리지 상무장관과 USTR(미국무역대표부)의 야히터씨가 인정한 가격이라는 것.

또 포철이 이 합작회사의 투자에 참여하게 된 것은 미국측의 강력한 요청에 의한 점도 들었다. 데이비드 로데릭 US스틸회장은 도산 직전인 캘리포니아주 피츠버그공장을 되살리기 위해 포철과 합작, 싼 철강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박태준 회장도 한미경제협력차원에서 이에 응했다는 것이다. 낡은 기계설비를 새 것으로 교체하고 한국식 경영기법을 도입, 회사를 되살려 놓으니, 이제 와서 이를 문제삼는다는 것이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1986년 박태준 포철 회장은 갑자기 산타 할아버지가 됐다. 그해 포철과 미국 US스틸이 합작으로 설립한 UPI사의 한 직원으로부터 보낸 감사편지에서 포철 회장을 이렇게 불렀다.

1,400여명의 직원과 부인의 발크기를 일일이 조사, 한국산 유명 조깅화를 크리스마스선물로 보낸 인정에 감사의 편지였다.

당시 극심한 노사분규와 경영난에 시달리던 US스틸 피츠버그공장이 포철과 투자로 UPI라는 새 간판으로 갈아 달면서 회생, 출범 3년만인 88년 3,000만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이를 놓고 서구식 합리주의와 동양식 가족주의의 결실이라고 했고, 한미 경제협력의 모범이라고도 했다.

포철측은 매달 한번씩 전종업원에게 회사 경영상태를 브리핑했고 사원부부를 호텔로 초청하는등 한국적 가족운동을 벌였다.

비록 혼혈아로 태어났지만 동양식 경영의 포근함에 되살아난 UPI가 때아닌 날벼락을 만나 좌초직전에 몰린 것이다. 그것은 한쪽 파트너인 미국측이 상대방 파트너가 공급하는 핫코일에 30%의 고율관세부과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미 경제협력의 모범케이스로 태어난 UPI가 격심한 풍랑을 만나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통상문제에는 회사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준 케이스였다. UPI는 한미협력의 성공 케이스가 아니라 협력의 한계를 노출시키며 무역전쟁에 짓눌린 희생양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 철강업체가 포철산 핫코일에 대해 덤핑제소를 하면서부터 미국의 UPI사는 자체의 힘으로 미국내 여론에 호소해 가며 무피해 판정의 위해 뛰었다.

UPI사의 간부들은 1992년 6월 미국 철강업계가 한국산, 특히 포철산 핫코일에 대해 무역제소를 했을 때부터 목표를 「무피해」로 잡았다. 덤핑마진율을 낮추기 위해 뛰어다니기보다는 「포철의 핫코일이 미국산업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명분을 세워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UPI간부들은 미국사회에서 어떤 형태의 로비활동보다는 합리성과 정의가 먹혀들어간다는데 착안했다. 간부들은 우선 직원교육에 나섰다. 한국측 파견간부보다 USS측 파견간부가 더 적극적이었다. 비디오등을 통한 직원교육 내용은 이렇다.

“UPI는 포스코의 코일이 없으면 돌아갈수 없다. 포스코의 코일이 있기 때문에 존속하고 1.000여명의 미국인이 직장을 갖게 된다. UPI가 망하면 미국서부에 냉연강판 아연도강판을 공급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서부지역에 외국산 철강재의 수입을 오히려 방어할 수 없다. UPI는 수출까지 한다. 그리고 수송업등 부대산업을 창출, 지역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런 교육은 노조 대표들에게도 먹혀들어갔다. 1,000여명의 미국인 근로자들이 일치단결하여 포스코의 핫코일에 관세를 부과해서는 안된다며 「회사살리기」에 나섰다.

“USS-POSCO를 살리자”

UPI직원들은 캘리포니아 피츠버그의 쇼핑몰에 피킷을 들고 나가 산업무피해판정을 위한 시민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지역주민 7,000여명의 사인을 받았다. UPI 직원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캘리포니아주의 각종사회단체 상공회의소 병원 학교등에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설득했다. 캘리포나아주의 주지사, 상하원의원, 주상공회의소가 UPI직원들의 호소에 공감했다.

캘리포니아의 주정부 주의회는 물론 철가업계 퇴직자모임, 지역매스컴이 나섰다. 이들 미국인과 미국단체들은 클린턴 대통령, ITC, USTR(미무역대표부), 연방의회를 상대로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갑자기 UPI는 서부지역은 물론 전국에서 유명해졌고 핫코일에 대해 무역제소를 당한 다른 나라들도 UPI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보수적인 ITC의 스태프 등이 캘리포니아의 UPI공장을 이례적으로 방문했다. ITC 스태프들은 미국의 어떤 철강업체도 포철만큼 질좋고 사이즈 맞는 핫코일을 장기적으로 공급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UPI측 논리를 수용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것뿐 포철의 핫코일은 「수입재가 아니라 원료」라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ITC는 이렇게 해서 마침내 포철의 핫코일에 산업무피해 판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UPI직원들의 이같은 노력이 미국정부를 움직인 사실은 언제 또다시 닥칠지 모르는 선진국의 무역보복조치에 어떻게 대응할지, 그방법을 가르쳐 줬다.

UPI직원들의 운동은 결국 인정을 받았다. 미국상무부는 93년 3월 12일 포철산 핫코일에 대한 덤핑예비판정시의 마진율이 잘못 계산됐다면서 당초의 30%에서 22.19%로 낮췄다. 6월 21일 최종판정에서는 핫코일의 마진율을 8.18%로 낮춰 판정했다. 7월말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는 “포철의 핫코일이 미국산업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최종판결을 내렸다. 이에딸 포철산 핫코일은 관세를 물지않고 미국국경을 넘어 UPI에 공급될 수 있게 됐다.

고학봉(高學峰) UPI부사장은 ITC의 판정은 “UPI사의 직원과 가족, 그리고 지역주민이 UPI를 살렸다”고 말했다. 고부사장은 7월초에 있은 포철의 임원인사에서 포철 부사장직과 UPI 부사장직에서 동시에 물러나야 했으나, ITC판정에 힘입어 UPI 부사장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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