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신용의 위기①…추락하는 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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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신용의 위기①…추락하는 월가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1.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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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속이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불변의 원칙…총체적 위기에 빠져

 

2002년 7월 25일 아침, 케이블 회사 아델피아(Adelphia)의 창업자 존 리가스(John Rigas) 회장이 뉴욕 맨해튼에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 의해 수갑에 채워진채 호송됐다. 죄목은 횡령죄.

리가스 회장은 회계장부를 분식, 23억 달러의 부채를 숨겨놓고, 회사돈 10억 달러를 빼돌려 호화 아파트를 사고, 골프장을 건설하는 등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그의 두 아들 마이클과 티모시 리가스도 그날 FBI에 체포됐다. 가족이 회사 장부를 속여 가며 한탕 해먹은 것이다.

뉴욕 월가에 금융시장이 형성된 지 200여년이 되지만, “시장(투자자)을 속인 회사와 기업인ㆍ금융인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불변의 원칙이 있다. 20세기 전반에 미국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던 JP 모건의 아들은 1929년 대공황때 주가 조작을 한 혐의로 의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를 받았다. JP 모건은 사건후 70년의 명맥을 이어왔으나, 21세기초에 만성적자에 허덕이다 체이스맨해튼은행에 인수되고 말았다.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S&L) 사건, 마이클 밀큰(Michael Milken)의 정크본드 사기사건, 1990년대 살로먼 브러더스의 미국 국채(TB) 부정 거래사건 등 뉴욕 월가에는 10년 주기로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터쳤다. 그러나 이들 사건의 주역들은 거의 철창으로 갔고, 그 회사들은 모두 파산 또는 매각돼 지금은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다.

 

9·11 테러 직후에 터져나온 일련의 회계분식 사건은 해당 기업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거짓말을 참지 못한은 미국 사회의 풍토를 보여준 것이다.

▲ 데니스 코즐로스키 (타이코 회장) 기소 ▲ 스뮤엘 왁설(임클론 회장) 체포 ▲ 제프리 스킬링 (엔론 회장) 사임 ▲ 케네스 레이 (엔론 회장) 사임 ▲ 버나드 에버스(월드컴 회장) 사임 ▲ 존 라가스 (아델피아 회장) 체포 ▲ 찰스 워트슨(다이너지 회장) 사임 등등….

테러 직후 에너지기업 엔론이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부채를 숨겨 수익을 부풀린 사건이 터졌을때만 해도 분식회계사건은 한 회사의 문제로 그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다음해인 2002년 미국에서 터진 회계 분식 사건은 헤아릴수 없을 정도였다. 중요한 것은 회계분식과 함께 최고경영자의 비리가 함께 밝혀지면서, 회사는 물론 경영진이 동시에 몰락했다.

 

▲ 뉴욕 월가의 연방정부청사. 미국 연방정부는 시장의 원칙을 지키지만, 시장을 속이는 행태는 엄격히 처벌한다. /사진=김인영

 

미국 제2의 전화회사 월드컴은 미회수 대금 38억 달러를 매출로 잡아 회계를 분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회사의 분식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식이 폭락하고, 채권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지고, 은행들은 돈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 회사는 2002년 여름에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인 1,040억 달러의 파산을 신청하고, 회사돈 3억6,000만 달러를 남용한 에버스 전회장은 의회청문회에 불려 다녔다.

종합 기계회사인 타이코는 분식회계에 이어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코즐로시키 회장의 사치가 도마위에 올랐다. 코즐로스키 전회장은 얼마전만해도 거액의 현금을 쾌척하는 자선사업가로 존경을 받았지만, 회사돈을 빼내 맨해튼의 침실 13개짜리 고층 아파트를 매입하는데 1,800만 달러를 썼고, 호화 아파트를 장식하기 위해 회사돈 1,300만 달러로 프랑스 화가 르노와르, 모네 그림을 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코즐로시키는 기소됐고, 그의 회사는 풍전등화에 직면했다.

회계조작 사건은 미국 경제를 심각한 ‘신용의 위기(confidence crisis)’에 빠트렸다. 거의 매일같이 터져 나온 기업의 분식회계가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경제는 금융시장의 신뢰에 의존하고, 금융시장은 정보에 의해 다수의 투자자들이 거래하는 공간이다. 이 시스템의 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이며, 이 정보의 신뢰성이 바로 ‘투명성’의 개념으로 정리되고 있다. 금융시장의 기초 정보가 되는 분식 회계 사건이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뉴욕 월가가 동요하고, 미국 경제가 흔들렸다.

2002~2003년 분식회계로 촉발된 미국의 기업 범죄는 1929년 대공황 이래 최대 규모로 평가되었다. 대공황때에도 대형 금융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증시가 장기침체에 빠졌고, 경제가 10년 이상 가라앉았다. 대공황은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전쟁 특수에 의해 가까스로 해결됐다.

거품이 꺼지면서 나타난 미국 경제의 ‘신용의 위기’는 주가하락을 촉진시키고, 투자 위축, 소비 둔화, 경기 회복 지연의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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