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⑧…아르헨티나 국가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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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⑧…아르헨티나 국가파산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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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가 있는 터키, 파키스탄은 국가 부도 위기에서 미국이 구제

 

21세기가 열리면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에 비해 불행한 나라였다. 미국의 미움을 받아 끝내 국가파산을 선언해야만 했다.

필자는 1999년 여름, 취재차 라틴아메리카를 순방하던 길에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도 들렀었다. 그때 플라사 데 마요 광장에 서서 붉은 벽돌로 지어진 대통령궁을 마주보며, 영화 속에 나오는 에비타를 그려보았다.

영화 ‘에비타’에서 주연 마돈나는 저 대통령궁 2층 베란다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광장 앞에 모인 노동자들에게 단결을 호소했다. 그녀의 옆에는 남편 후안 페론은 “인민의 폭력은 정의”라고 호소, 노동자의 힘을 업고 대통령에 당선돼 ‘무산대중의 국가’를 건설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파리’라고 불리는 부에노스 아에레스는 유럽풍의 정갈한 도시다. 도시에서 한시간쯤 나가 리오 사미엔토 강을 유람선으로 관광하면, 호화 별장과 방갈로가 해안 삼각주에 즐비하고, 집집마다 개인 요트가 정박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그러나 도심으로 돌아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길거리엔 몇푼 안되는 물건을 깔아놓고 하루종일 물건을 파는 노점상과 어린 아이를 업고 구걸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부에노스 아에레스를 방문하던 99년에 아르헨티나는 달러와 페소를 1대1로 교환하는 태환정책을 곧 폐기할 것이라는 분석이 뉴욕 월가에서 나왔다. 이미 아르헨티나 경제는 붕괴 직전에 있었다. 그렇지만 용케 3년을 버틴 것은 IMF가 구제금융을 줬고, 미국이 뒤에서 이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60년전 에바가 연설하던 그 플라사 데 마요 광장에 시위대들이 몰려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바람에 2001년 12월 페르디난도 델라루아 대통령의 정권은 임기를 2년 남긴채 물러나고 말았다. 그의 공백을 베운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 임시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1,320억 달러에 대한 대외채무에 대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고, 최저임금을 두배 올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야말로 배짱이다. 외국 빚을 갚지 않고, 그 돈을 근로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력을 보유한 강대국이었다.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비옥한 땅덩어리에 스페인과 독일계 식민자는 쉽게 잘 사는 나라를 건설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 유럽풍의 아름다운 나라를 망친 것은 바로 페론주의, 즉 무산대중을 위한 포퓰리즘이다.

아르헨티나는 페론과 에바(에비타의 애칭)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페론 장군과 그의 둘째 부인 에바의 이야기는 혁명과 야망으로 점철된 1940년대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페론 부부는 1940년대에 남미식 사회주의를 주창, 민간기업을 국영화하고 노동단체에 막강한 권력을 심어줬다. 페론주의는 오랫동안 아르헨티나를 지배했다. 페론주의를 신봉하는 노조는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근로자들에게 직장을 철밥그릇처럼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고,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뉴욕으로 5분간 전화하는데 40달러가 나올 정도로 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폴 오닐 재무장관은 IMF의 요구조건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아르헨티나에 자금지원을 거부했고,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를 낼수밖에 없었다. IMF는 비과세 혜택을 받는 40%의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놀고먹는 연금생활자를 줄이라고 요구했고,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스트 정부는 이를 거부, 결국 미국의 미움을 산 것이다.

마돈나는 영화에서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라(Don't cry for me, Argentina)’며 에바를 노래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르헨티나를 위해 울지 말라(Don't cry for Argentina)’는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미국은 왜 브라질은 도와주고, 아르헨티나는 도와주지 않았던 것일까. 뉴욕 월가의 사람들은 브라질에 떼먹힐 돈이 아르헨티나보다 많았던 점을 들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브라질의 대외 채무는 2,500억 달러로 아르헨티나보다 두배나 많다. 월가에서는 브라질에 많은 돈을 빌려준 시티은행이 미국 재무부를 움직였고, 시티은행에는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이 회장으로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구제에 차이를 둔 것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논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터키는 아르헨티나보다 훨씬 적은 규모의 해외부채를 안고 있는데도 미국이 직접 나서 구제해주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의 기지로 터키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도 대외부채가 얼마되지 않은데도 파산 직전에 미국이 구해주었는데, 그 이유는 9·11 테러 직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지로 활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경제전문가는 아르헨티나아에 미군기지가 있었더라면 미국이 구제금융을 주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의 주도적 국가이고, 브라질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다면 미국으로선 세계전략 추진에 치명적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경제지원을 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또 브라질의 지도자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움직인데 비해, 아르헨티나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려했지 미국의 요구를 따르지 않았던 괘씸죄가 적용됐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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