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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안면도를 섬으로 만들었을까

기사승인 2017.10.17  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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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험한 태안 바닷길 피해 운하 건설…그 입구가 유물의 보고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라 곶(串)이었다. 태안반도가 길게 이어진 뭍이었는데, 조선 인조때 뭍의 좁은 허리부분을 파서 운하를 만들면서 섬이 되었다.

태안반도 앞바다는 물길이 거세고 암초가 많아서 예로부터 험난한 바다로 악명을 날렸다. 아무리 노련한 뱃사람이라도 잠시 한눈을 팔다가 암초를 만나 난파되기 쉬운 곳이었다. 그 중아세도 신진도와 마도 주변의 해협이 가장 험했다. 이를 난행량(難行梁)이라고 하다가 이름이 불길하다 하여 안흥량(安興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그런데 이 곳은 우리 해역에서 주요한 항로였다. 영호남에서 올라오는 세곡(稅穀, 세금으로 받은 곡식)을 실은 배(조운선)가 지나는 길목이었다. 당연이 해난 사고가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4년(1392년)부터 세조 1년(1455년)에 이르는 60여년 동안 200척에 달하는 선박이 태안 안흥량(安興梁)에서 침몰했다.

 

태안반도에선 ‘쌀썩은여’라는 지명이 있다. 안면읍 신야리 바닷물 속에 있는 암초다. '여(礖)'는 썰물 때에 바닷물 위에 드러나고 밀물 때에는 바다에 잠기는 바위를 말한다.

'쌀썩은여'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크게 두가지 속설이 있다.

첫째, 조선조에 전라도의 세곡을 서울로 운송하다가 세곡선 감독관이 쌀을 빼내 부당하게 사복을 채우다가 안면도에 이르렀을 때 세곡이 몇섬 남지 않았다. 감독관은 세곡선을 암초에 고의로 부딛쳐 파선시켜놓고 사고라고 호위로 보고했다. 조정의 조사반이 파견되었지만 고의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더 이상 문책하지 않았다고 한다.

둘째, 실제로 많은 세곡선이 암초에 부딛쳐 파선되어 싣고 있던 쌀이 물속에 가라앉아 썩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하였건 이 지역은 항해가 어려운 지역이었다. 태안(泰安), 안면(安眠)이라는 지명도 이 지역을 지나는 해상수송이 ‘태평하고 안락하게’ 이뤄져 ‘잠을 편히 자길’ 원한다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 태안반도 인근 운하계획 /네이버 지도

 

이 곳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고려시대 때부터 운하를 파는 작업이 이뤄졌다. 태안반도를 돌지 않고 내륙으로 운하를 파면 변화무쌍한 물길과 암초를 피할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 인종 12년(1134년)에 서해 태안 쪽의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굴포운하의 개착을 시도했다. 공사는 무려 500여년간 중지와 재개를 10여 차례 반복하며 파들어갔으나 결국 7km 중 4km 정도만 파고 중지되었다. 당시 기술로 공사 중 드러난 암반층을 뚫고 물길을 낼 기술력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기 위해 5곳의 갑문을 설치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실행되지 못했다.

이 실패한 운하(굴포운하) 공사는 현재 태안군과 서산군의 경계를 지나도록 설계되었다. 지금의 장비와 기술로 공사한다면 1년이면 충분히 완공시키지 않을까.

차선책으로 선택된 것이 조선 인조때 안면읍 창기리와 태안군 남면 신온리 사이를 파내는 공사였다. 이 공사가 성공해 1638년에 판목운하가 완공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운하(運河)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운하의 개설로 안면곶이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한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가 되었다. 태안군의 면적이 504.94㎢이므로, 굴포운하를 완공했다면 섬은 거제도(378.795㎢)보다 크고 제주도보다 작은 국내 두 번째 섬이 되었을 것이다.

1970년(연장 200m) 태안반도와 안면도를 연결하는 연육교가 개통되었다. 330년만에 끊어졌던 곳이 다시 연결된 것이다. 2002년 꽃 박람회가 열리면서 다리를 하나 더 만들어 지금은 두 개의 다리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하지만 한때 조운선의 무덤이었던 이 험난한 해역이 이젠 우리 역사의 자료를 발굴하는 보고가 되었다.

태안 해안에서는 2007년부터 고려 시대 태안선과 마도1‧2‧3호선, 조선 시대 조운선인 마도4호선(2015)이 잇달아 발견되었다. 현재가지 발굴된 고선박은 14척이다.

지난해 발견된 마도4호선은 조선시대 선박인데, 그 곳에선 분청사기, 목간세곡, 선원들의 생활용품등 유물 300여점이 발굴되었다. 목간에는 나주광흥장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광흥창(廣興倉)은 나주에 있던 관아로 파악되고 있다.

 

▲ 태안 당암포 해역에서 나온 청자 접시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충남 태안군 당암포 해역에 대한 수중발굴조사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17일엔 개수제(開水祭)를 치렀다.

당암포 해역 수중유적은 지난해 문화재청과 서울지방경찰청이 공조 수사한 도굴사건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2월 긴급탐사를 시행해 청자접시 등 다량의 유물이 발견했다.

당암포 해역 수중유적은 육지와 안면도를 나누는 안면운하의 시작점인 천수만 해역에 자리하고 있다.

조사단의 관심을 끄는 것은 조사해역에서 발견된 고려청자로 이 청자들은 1990년대 무안 도리포 해역 수중발굴에서 발견된 14세기 고려 후기 청자들과 유사한 형태이다. 이 청자들은 안면운하가 개통된 17세기 이전 천수만 해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해상활동을 직접 보여 주는 유적으로 과거 서해 항로의 무역활동과 해상교류를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당암포 해역은 사적으로 가지정되어 있으며, 이번 발굴조사를 계기로 연차적인 발굴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스캐닝소나, 다중빔음향측심기 등 첨단 해양탐사장비를 활용하여 앞으로의 조사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할 계획이다.

 

▲ 당암포 해역 수중 모습 /문화재청 제공

 

* 스캐닝소나(Scanning sonar): 수중에 설치한 뒤 음파를 이용하여 주변 해저면의 모습을 2차원으로 볼 수 있는 장비

* 다중빔음향측심기(Multi-beam echo sounder): 조사선박에 설치하여 해저면의 모습을 3차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비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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