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의 통신보국⑦…이동통신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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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의 통신보국⑦…이동통신 유산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1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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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 최종현 회장, 결국 포기…차기정권과 밀약설로 또 곤욕

 

1992년 8월 하순은 선경의 최종현회장에겐 그 어느 때보다 괴로운 시기였다. 선경이 공정한 경쟁과 절차를 겉쳐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으나,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정치권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당해야 했다.

사업자 선정 후 4일째인 8월 24일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로부터 사업권 반납을 권유받은 이후 공식석상을 피해온 최 회장은 학계에 있는 미국 시카고 대학동문을 두루 만나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를 물어보았다. 동문 중 일부는 “정정당당하게 따낸 만큼 사업권을 반납할 필요가 없다”고 충고했지만 대체로 자진 반납을 권했다. 비록 정치권의 직간접 압력이 좁혀오고는 있지만 최 회장이 고집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는 악화된 여론은 물론 사돈인 노태우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해 사업권 자진반납을 결심하게 된다.

사업자선정 일주일만인 8월 27일, 최 회장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그동안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을 발표했다.

“선경의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으로 사회적 물의가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권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나 선경이 정보통신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그날로 대한텔레콤의 손길승 사장은 체신부를 찾아가 포기각서를 제출했다.

선경의 자진반납으로 사태가 마무리되자 그동안 국책사업이 정치논리에 밀려서는 안된다며 강행을 건의해왔던 청와대 비서실과 체신부등 정부부처는 허탈감에 빠졌다. 그리고 정치권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렸다.

“정부가 정해진 절차를 거쳐 선정 작업을 마쳤고 더구나 최고통치권자가 강력히 뒷바침하는데도 어이없게 번복되니, 이것이야말로 공권력 부재가 아닙니까. 정치란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것아닙니까. 공장 하나 경영해 본 경험이 없는 자들이 행정을 뭘 안다고 그럽니까.”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하고 법률에 의한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신시장에 대비, 빨리 서둘렀고 엄정하게 했으나 근거도 없는 불신의 파고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죠. 야당의 타성은 그렇다치더라도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의혹과 불신의 눈으로 보았으니, 국민들이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질 않습니까.”

이는 당시 정부 부처의 관리들의 입에서 나왔던 말들이다. 관료들이 눈에 비친 당시의 상황은 충분히 흥분할만 했다. 사실 이동통신 자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누가 하든간에 정부가 과감히 지원해야 할 국책사업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필요성을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제2이동통신을 둘러싼 해프닝은 한 국가의 행정절차 면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작업을 맡았던 체신부 고위층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 대학교수와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충남 도고에 있는 통신사 휴양소에서 평가작업을 했는데, 우리(체신부측)가 행여 말이라도 붙이면 「참견말라」고 했어요. 당시 심사위원들은 지금도 그때의 선정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선정에 일말의 의혹이 있었다면 체신부 관리들이 새 정부가 들어선후 제대로 살아날리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당시의 실무진이 개혁을 부르짖는 새정부에 들어와서도 모두 온전하고 윤동윤(尹東潤) 차관이 새 정부에서 장관까지 하는 것을 봐도 의혹인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동통신 문제는 결코 경제 문제가 아닌 정치적 사건이었다. 집권여당의 후계자라고 할수 있는 대통령후보의 문제제기에 의해 정치적으로 뒤집어진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문제에 관한한 노 대통령과 선경의 최 회장은 정치권에서 문제제기한 사돈 사이임를 이용해서 서로 어떤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 또 92년의 제2이통사업자 선정이 체신부의 주장대로 공정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보기에는 의혹을 갖기에는 맞아떨어지는 주제였고 상황배경도 그러했다. 선경의 최 회장은 6공기간 선경그룹 회장으로서가 아닌 사돈으로서 대통령에게 경제적인 이슈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건의했고 중요한 몇 가지는 관철시키기도 했다.

1989년말 최 회장은 노 대통령을 찾아가 금융실명제 실시에 대한 반대론을 폈다.

“실명제를 실시하면 경제가 큰일 납니다. 경기가 위축된 상태에서 노출을 꺼리는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우려가 높은데 우리 실정에도 맞지 않는 실명제는 보류해야 합니다.”

물론 당시 문희갑(文熹甲) 청와대 경제수석이 총대를 메고 추진된 금유실명제 실시가 전면 보류된데는 최 회장의 건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실명제에 대한 반대의견이 공개적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던 상황에서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돈이라는 특수관계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1990년초 실명제 보류와 함께 문 수석이 물러나고 이승윤(李承潤)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과 김종인(金鍾仁) 경제수석이 새 경제팀을 이루고 등장했다. 그 무렵 민자당 의원이었던 이승윤 부총리의 임명에는 최 회장의 천거가 있었다는 소문이 시중에 나돌기도 했다. 이승윤씨와 최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학 동문으로 학연을 통해 평소에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대통령과의 사돈관계가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 회장은 사돈으로서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경제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은 사이였다. 대통령의 임기말기에 와서는 이 관계가 의혹이 의혹을 낳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

최 회장의 사업권반납은 선경그룹 내부에서도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직원들은 “대통령은 물통령, 회장은 물회장”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9월 8일 최 회장은 사업권 반납 당시 기자회견에서 천명한대로 “이동통신사업의 재도전”을 공식선언했다. 그는 그룹 임직원에게 “새로운 각오와 패기로 세계일류 종합정보통신기업 대비해야”라는 제하의 문건을 보냈다. 최 회장은 그 문건을 통해 “사업권반납 결정이 선경의 경영이념과 사업취지에 어긋난다는 판단에서 이뤄졌으며, 2천년대 세계일류 종합정보통신기업으로 성장하려는 그룹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재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분명히 했다.

이는 반납이후 허탈해 하는 그룹 임직원을 달래는 대내용 호소문의 성격을 띠었지만 글귀의 내용 면면에는 반드시 사업권을 되찾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이때 「차기 대통령후보와 최회장 간에 묵계가 있었다」느니,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다음 정권에서 선경이 사업권을 내락받았다」느니 하는 풍문이 시중에 떠돌았다. 선경측은 사업권 반납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른 소문으로 엄청난 이미지 훼손을 당해야 했다.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잡음은 정부의 대외공신력을 떨어뜨렸다. 구미 기업의 시각으로 볼때 한국정부의 정책발표는 언제든지 뒤집어질 위험이 있었고 한국정부 또는 기업과의 합작투자에 대해 불시느이 눈으로 볼수 밖에 없었다.

단적인 예로 이동통신 파문으로 국내가 시끄러울 때 베트남 동남방에 위치한 빅베어 해저유전개발계획의 한국기업 입찰참여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해저유전은 매장량 8백억 배럴로 20세기에 개발된 유전중 단일규모로는 세계최대였다. 석유개발공사, 쌍용, 현대, 삼성, 럭키금성, 대성, 대우, 삼환등 8개기업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입찰에 참여했다. 그런데 베트남정부는 한국정부를 믿을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 정원식총리가 베트남의 반 키에트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협조요청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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