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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우보천리(牛步千里) 출장

기사승인 2017.10.15  15: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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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 요령이 통하는 세상에, 뚜벅뚜벅 나만의 길을 걸어가리

 

[조병수 프리랜서] 1996년 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과 유럽지역 점포를 돌아보는 경영진을 모시고 출장을 갔을 때다. 동남아와 유럽지역을 거치며 시차(時差)가 두 번이나 달라지는 일정이어서 그런지 제법 피곤했던 것 같다.

마지막 체류지인 영국의 런던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식사를 가져다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내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두런거리는 분위기와 안내방송소리에 잠을 깨서 보니까 비행기가 벌써 서울에 접근하고 있었다.

막 잠에서 깬 나를 보며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분이 말을 걸어오며 인사를 했다.

“나는 서울시의원 000인데, 어디 먼데 갔다가 오는 모양이지요?”

“아, 예…, 좀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글쎄 런던에서 서울로 오는 약 11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비행기에서 주는 기내식을 하나도 먹지 못하고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니···.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 동안을 한번도 안 깨고 내리 잘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당시 C은행장은 해외출장을 다닐 때 부하직원을 힘들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미리 계획된 일정대로 움직이고, 저녁시간에는 식사를 마치면 그대로 숙소로 들어가서 수행원들도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모시고 다니는 입장에서는 그 시간부터 또다시 바빠진다. 내가 입을 옷가지도 건사하고, 그날 일정에서 챙길 것과 본점과의 연락사항, 다음날 계획들을 확인하다가 보면 금방 새벽 2~3시가 된다.

그 도시 중심가에 있는 호텔방의 깔끔하다 못해 예술적으로 정돈된 시트 위에서, 제대로 이불도 한번 덮어보지 못하고 몇 십분 눈 붙이다가 바로 출동 준비에 들어간다. 다음날 오전일정이 바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짐까지 꾸려야 하니, 더더욱 눈 붙일 시간이 없다.

그렇게 호텔 방의 푹신한 침대를 즐길 여유도 없이 밤을 곧추세우고 나올 때는, ‘호텔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차 등으로 자칫 피곤해지기 쉬운 해외출장에서는 제법 몇몇 날을,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모든 시간을 윗분들과 함께 하게 된다. 그 모든 일정을 계획대로 순조롭게 마치고 그날의 일정표를 찢어버릴 때의 기분은 상큼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점점 일정표의 두께가 얇아져 가면, ‘이제 이 출장도 무사히 끝나가는구나’하는 뿌듯함과 안도감이 교차된다.

요즈음도 가끔씩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시 의원이 “어디 먼데 갔다가 오는 모양이지요?”라고 하던 말이 떠오르며, 그래도 그때가 열심히 일하며 행복하던 시절이었음을 깨우치곤 한다.

 

▲ 인천 송도 시가지에 걸린 한가위 보름달

 

긴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출장을 떠났던 딸이 추석날밤 귀국길에 올라있다. 최근 들어 제법 위험하다는 지역이라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한결 마음이 놓인다. 한가위 보름달을 올려다보면서 ‘어느새 세월이 흘러서 내 자식들이 그런 먼 길을 오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감회가 새롭다.

‘출장, 직장, 일’이란 단어들을 떠올리다 보니, 밤은 깊어가는데도 잠은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직장에서 일을 의욕적으로 하다가 보면, 전에는 남들이 하던 일들이 어느 틈엔가 내 곁에 수북이 쌓여 있음을 보게 된다. 어차피 자기 성격대로 살아가는 것이긴 하지만, 때때로 그 ‘요령 없음’에 헛웃음을 날리곤 했다.

미국에서 잠깐 일할 때 만나본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남의 것’도 귀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정당한 업무지시를 철저히 이행하려고 하고, 규정과 정해진 업무시간 만큼은 철저히 지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근무시간 중에 담배 피운다고 건물 바깥에 수십 명씩 몰려 있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개인적인 약속 등으로 점심시간을 몇십분씩 초과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없었다. 점심약속을 “12시 10분 또는 15분으로 했으면”하는 요청을 받으면서, 주어진 점심시간 2~30분전부터 우르르 몰려나가던 우리네 모습들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뉴욕에서 LA로 출장을 보내면서 은행규정에 따라 교통비와 일당(daily allowance) 등으로 구성된 출장비를 지급했더니, 돌아온 후에 물1병 값까지 자세히 기록한 지출명세서와 영수증을 첨부하면서 일당의 상당부분을 남겨서 반납하는 현지직원이 있었다.

“일당은 직급에 따른 한도개념으로서, 실비로 정산하지 않고 그 한도금액을 모두 개인에게 주면, 사용잔액은 개인소득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라며, 뉴욕 주 세법규정까지 찾아서 보여주는 그 직원의 사고방식이 새삼스러웠다.

소액의 경우엔 업무편의상 한도액 지급방법도 가능한 것으로 해석되어서 더 이상의 논의는 없었지만, 늘 일상의 업무처리 방식에 안주하기 쉬운 우리의 자세와 시각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만들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think outside of the box)”라는 문구를 되새겨준 셈이다.

그런 반면에, 그 지역의 대중교통 사정을 이유로 일당한도 외에 콜 택시비나 렌터카 비용까지 추가로 청구하거나, 자신을 방어하는 데에 급급한 이들도 있었다.

주재원의 경우에도 출장 길에 30분, 1시간 단위로 면담일정을 쪼개어가며 ‘직장의 시간’을 귀하게 쓰는 이도 있고, 업무출장을 가면서도 유유자적하게 해외생활의 기회와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듯 사회의 보편적 토양과 문화는 달라도, 사람들의 일터에서의 선택과 사는 방법이 각양각색임은 세상 어디에서나 차이가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런 ‘이기적인 요령들이 더 잘 통하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최소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궤적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랬다.

 

포도원 일꾼의 비유 같은 성경말씀에서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라”고 권면(勸勉)한다. 『30년만의 휴식』(이무석 著)이란 책에도 “세상에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내 몫이 있고 그 몫의 삶을 사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를 따르기가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내가 가진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며” 살아가야 함을 얘기해준다.

그런 권면과 말씀들 덕분에 그간 나에게 주어진 직분과 기회들이 더더욱 감사하게 여겨지고,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처럼 뚜벅뚜벅 나만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조병수 프리랜서 bscho5@hotmail.com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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