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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의 통신보국⑤…당정 충돌

기사승인 2017.10.12  11: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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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경이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되자 김영삼 대표측 강하게 이의 제기

 

선경의 대한텔레콤이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최종 선정된 1992년 8월20일 정명식 포항제철 사장은 청와대 경제비서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 사장이 청와대로부터 받은 전화내용은 이번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이 공명정대하게 치러졌고 경쟁에서 승리한 선경에 축하한다는 내용의 신문광고를 게재하라는 것이었다.

정 사장은 청와대 전화를 받고 안절부절했다. 전화의 요구대로 따르자니 선경에게 돌아간 이통 선정을 인정하는 게 되고, 그렇다고 최고 권력기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정 사장은 홍보담당 중역인 장중웅 상무를 불렀다. 장 상무는 정 사장으로부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애기를 듣고 “담당임원으로서 그런 광고를 낼수 없다”고 버텼다. 정 사장은 곧이어 청와대로부터 또 채근성 전화를 받았다. 정 사장은 이번에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세번째 청와대 전화는 장 상무에게로 바로 갔다.

장상무는 포철로서는 “그렇게 할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다음날아침 조간신문에는 선경이 공정한 이동통신 선정 과정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내용의 광고가 실렸다. 이 광고는 포철이 낸 것이 아니라, 이통사업의 또다른 경쟁업체인 코오롱이 낸 것이었다.

92년 7월 29일에 있은 이동통신 1차심사에서 선경이 탈락했으면 문제는 끝났을 것이지만, 선경그룹의 유공을 대주주로 한 대한텔레콤이 압도적인 점수차로 1위를 차지하자 특혜시비가 불붙기 시작했다. 청와대와 체신부, 그리고 심사에 참여한 학계와 연구기관인사들이 유공의 준비가 탁월했음을 누누히 강조했으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이를 호재로 삼고 쟁점화했다.

8월20일 최종선정이 있고나서 청와대는 선경의 선정은 공정했음을 경쟁업체의 입을 통해 입증하려 했고 체신부도 참여 6개사의 담당자들로부터 선정의 공정성에 관한 다짐을 받아냈다.그러나 탈락업체의 반발을 막아낼 수 없었고 정치권은 이를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하기 시작했다.

다음날인 2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자리잡은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사무실. 민자당최고위원을 맡아 정치에 참여하고 있던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도열해 있는 이동통신팀의 임직원들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 뒤 큰 소리로 호통부터 쳤다.

“왜 졌어. 내가 일등 하라고 했지, 언제 2등 하라고 했어?”

모두들 운동경기에 진 선수들 마냥 아무 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윽고 권혁조(權赫祚) 이동통신추진단장이 심사과정과 결과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해 나갔다. 정부의 추진일정 연기, 자기자본비율의 인하, 회계법인선정 등에서 문제점이 있고 공정한 선정이 아님을 브리핑했다. 권 사장의 설명을 듣던 박 회장은 “나쁜 사람들이군. 나는 승복할 수 없어”라며 속의 말을 내뱉었다.

박 회장이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경선후보라는 자신의 입장 때문에 이동전화경쟁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포철로서는 창업이래 경쟁사업에 이렇게 열심히 공을 들인 일은 없었기에, 체신부의 결정이 선경을 위한 짜여진 각본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8월 20일 송언종 체신부장관이 제2이동통신 심사평가단으로부터 최종심사결과를 넘겨받아 2통사업자로 선경이 확정됐음을 발표하자, 탈락한 포철과 코오롱측은 즉각 불만을 표출했고, 특히 포철이 강하게 반발했다. 또 정치권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정치이슈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선정 당일 포철과 코오롱을 정부발표가 나오기 무섭게 정부결정에 승복한다는 공식입장을 발표, 일견 초연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정치권의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탈락업체들은 “각본에 들러리만 섰다”며 선정과정의 불공정사례를 들고 나왔다.

당시 포철 이동통신추진반의 장중웅 상무의 설명이다.

“92년의 이통사업자 선정은 선경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체신부가 석유정제업의 자기자본지도비율을 35.2%에서 27%로 낯췄는데 이건 자기자본비율 미달로 신규자본참여를 제한받고 있는 선경의 유공에 유리한 점수를 주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심사기준과 방법 모두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때 포철은 사업자선정심사의 부당성과 선경의 이동통신 반납및 사업자선정을 차기정부에 넘길 것을 내용으로 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작성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워낙 강하게 밀고나오는 바람에 건의를 하지않고 이 건의문을 내부자료로만 사용했다.

당시 언론을 통해 부각된 사업자선정의 불공정사례를 몇가지만 요약해 보자.

▲ 추진일정연기 = 사업계획서 접수시기가 당초 92년4월에서 6월로 연기, 사업자 지정일정이 당초계획보다 2개월 순연됐음. 이는 미국의 벨 사우스社와 결별한 선경에 재검토 시간을 부여하기 위한 것임.

▲ 회계법인 선정 = 정부가 사업신청기업의 재무관련서류를 검토할 회계법인을 안진회계법인으로 선정했음. 이 법인의 대표는 태평양그룹회장의 처남인데, 태평양그룹을 매개로 한 안진과 선경의 모종의 담합이 있을 수 있음. (그무렵 선경은 태평양증권을 인수했다)

▲ 평가항목의 유출 = 선경의 계획서가 체신부의 평가항목및 심사기준과 너무나 일치함. 쉼표 어구까지 대부분 흡사함.

▲ 1차심사결과의 유출 = 당초 순위만 발표한다는 계획과는 달리 1차심사결과를 점수까지 공개. 1차심사결과를 바탕으로 2차심사에서 선경의 1위 굳히기를 위한 속셈으로 보임.

이같은 비판은 포철과 코오롱등 탈락회사들이 내부적으로 수집한 자료와 대체로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사업자선정의 불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비등하자 체신부가 일일히 해명하고 나섰지만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체신부실무자의 말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3배수의 추천을 받아 연구실적등에서 사업자신청기업과 다소라도 관계가 있으면 제외시켰습니다. 평가방법은 신사위원들이 내부토론을 거쳐 결정했고 중간에 「어떻게 되가느냐」고 물으면 오히여 「참견말라」고 반발할 정도였습니다. 선정방법과 기준에 대해 탈락업체들이 반발한다면 그것은 악속위반입니다. 참여회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의가 있으면 말하라고 했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더군요.”

해당기업들보다는 정치권이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발표당일 김영삼 민자당대표측은 즉각 고위당직자회의를 소집, 대책을 논의했다. 박희태 대변인은 “논의된 내용과 분위기는 전달할수 없다”며 일체 함구했다. 김대표가 정부의 발표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對국민발표를 검토중이라고 측근들은 설명했다. 노 대통령과 김대표의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있는 징후가 역력히 나타났다.

그날하오 청와대에서 열린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의 주례회동. 이동통신 문제에 관한 노 대통령의 강경방침과 김 대표의 연기입장이 맞선 가운데 회동을 마치고 청와대를 나섰다. 김중권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동통신문제는 일체 거론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김 대표는 곧바로 가락동 민자당정치교육원으로 직행, “정부가 깨끗하고 대통령이 정직해야 국민이 정부를 믿고따를 것”이라고 언급했다.

민주당은 긴급확대당직자회의를 열고 “김 대표가 반대하고 청와대가 강행한 것처럼 보이나 이는 내부적으로 짠 것이다”며 성토했다. 다음날 민주당의 김대중 대표는 “김영삼 대표는 수시로 당정회의도 주재하고 일주일에 한차례씩 청와대회동을 통해 국정을 공유해 왔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차별성을 부각시켜 책임을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야당의 집요한 공세가 노 대통령은 물론 김 대표에게로 집중되자 김 대표는 강릉 지구당개편대회 참석차 가던중 전날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이동통신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됐다”고 발표하라고 서울에 남아있는 측근들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김 대표 진영에서는 김 대표의 지시대로 이동통신에 대한 반대입장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대외에 밝혔다.

그런데 이 발표는 김중권 수석이 전날 한 발표와는 정반대였다. 김수석은 “김 대표가 얘기한대로 발표했다. 나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양심을 걸고 다시한번 얘기하거니와 있는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누구말이 옳은지는 알수 없어도 청와대와 김 대표 진영과의 견해차가 심각한 것만은 확실했다.

강릉 문화회관에서 열린 지구당 대회에서 김 대표는 이동통신문제를 직접 언급은 않았으나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상당히 심각한 톤으로 표시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지도층이 청렴결백한 풍토조성에 앞장서야 합니다. 나도 내 아내와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나라를 더욱 사랑합니다.”

김 대표의 강릉 발언이 노 대통령을 대로케 한 것은 당연했다. 다음날인 22일 노 대통령은 긴급수셕비서관 회의를 소집, 아동통신 사업에 대한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체신부 결정에 대한 재고나 사업 연기 등은 논의되지 않았으며 국정 조사권을 발동해서라도 선전 과정의 공정성을 검증, 의혹을 적극 불식시키자는 정면돌파 방식이 논의됐다.

당정간 정면 충돌의 조짐이 보이자 민자당의 김종필, 박태준 최고위원이 이상연 안기부장과 정해창 대통령비서실장 등 정부측 인사와 다각적으로 접촉,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기 시작했다. 서동권 청와대 정치특보, 김영구 민자당 사무총장, 최창윤 김대표 비서실장, 김덕용 의원등도 막후 대화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양측의 입장을 살리는 방안은 사업자로 선정된 선경측이 사업자선정을 반납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체신부가 선경에 사업자선정을 통보한지 2 - 3일만에 민자당의 수뇌부는 사업자반을 선경에 타진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김 대표의 오른팔격인 최형우 의원이 선경측과의 막후협상에 나섰다.

23일은 일요일인데도 불구, 민자당과 선경 사이에 이동통신사업자 반납을 위한 막바지 막후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경측은 대주주인 유공의 지분이 31%에 지나지 않아 독자적인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사업권을 일방적으로 포기하기 어렵고 사업을 포기할 경우 컨소시엄에 참여한 국내외업체로부터 손해배상소송등 법적책임추궁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유공의 이동통신 참여지분을 국민주로 전환, 이익을 국민에게 환원하겠다는 선언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제안마저 김 대표측의 뜻을 돌리지 못했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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