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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⑤] 전쟁과 함께 발전한 월가

기사승인 2017.10.11  1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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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 직후 월가의 애국 열기…큰 손들, ‘Buy America'로 전환

 

9·11 테러 참사로 4일간의 긴 휴장을 단행했던 뉴욕 증시가 2001년 9월 17일 다시 문을 열었다. 개장 첫날 월가의 주제는 애국심이었다. 대형 성조기가 월가에 걸리고, 트레이더와 딜러들은 동료들의 주검을 옆에 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전 9시 30분, 리처드 그라소 뉴욕증권거래소(NYSE) 회장은 “우리의 영웅이 증권시장을 개장한다”며 사고 현장에서 숨진 경찰관과 소방관의 동료들에게 오프닝 벨을 울리는 기회를 부여했다. 짧은 묵념 시간에 스피커에서는 ‘하느님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라는 가곡이 트레이더들의 심금을 울렸다. 포커판의 경쟁자처럼 서로를 속이던 그들은 친구가 되어 귓속말로 투매 자제를 약속했다. 이날 뉴욕 증시는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로 폭락했지만, 테러 공격에 대한 애국심 덕분에 패닉을 면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의 거래가 아니라 시장이었다.

뉴욕 월가의 큰손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렌 버핏 회장,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전회장등 미국 경제계의 거물들도 방송에 나와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애국심은 200여년 뉴욕 월가의 출발이고, 역사였다. 월가는 13개 식민주가 독립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전쟁 채권을 발행하면서 시작됐다. 뉴욕의 상인들이 8,000만 달러의 연방 채권을 거래하기 위해 맨해튼 남단 나무그늘에 모인 것이 월가의 시초다. 그후 대영전쟁, 남북전쟁등에 필요한 전비를 소화해낸 것도 월가다.

남북전쟁때 제이 쿡이라는 전설적인 월가의 펀드매니저는 북군의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중소상인, 농민을 찾아다니며 애국심으로 채권을 사라고 설득했다. 그의 호소에 응한 소액투자자들은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북군을 승리로 이끌어 미국을 통일시켰다.

지난 80년대 연방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릴 때 미국인들은 뉴욕 월가를 통해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정부의 파산을 막았다. 같은 시기에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남미 국가들이 국가 파산을 겪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 들어 월가의 중심이 증권 거래로 바뀌면서, 월가의 매니저들은 수많은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기업에 조달하고 있다. 뉴욕 증시는 미국인과 미국 기업을 연결하는 고리이며, 증시가 살아야 투자자 개인과 기업이 동시에 산다는 등식을 형성했다. 그것이 월가의 애국심이다. 월가는 테러리스트의 잔인한 공격에도 불구, 애국심을 발휘, 금융시장을 살리고, 개인투자자와 산업을 보호하는 의무를 행한 것이다. 뉴욕 월가의 리더들은 증시가 살아야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산다는 명제를 21세기 첫 전쟁에서 제시했다.

하지만 개장 5일 동안에 다우존스 지수는 14. 5% 폭락, 주간 단위로 1929년 대공황 이래 70년만에 최대 폭으로 폭락했다. 개인투자자들이 애국심을 발휘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관투자자들은 이득을 얻기 위해 주식을 내다팔았던 것이다. 겉으로는 어깨를 걸고 애국심을 부르짖었지만, 애국심이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제금융시장이 테러집단의 의도대로 붕괴되기 직전에 놓여 있었다. 이때 유대인이 나섰다.

 

▲ 뉴욕증권거래소(NYSE) /위키피디아

 

^테러 발생 일주일 후인 9월 18일은 유대인들의 설날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였다. 미국의 공식 공휴일은 아니었지만, 유대인들은 민족 명절인 이날을 휴일로 삼아 업무를 중단했다. 필지는 이날 사무실로 나가면서 뉴욕 맨해튼 FDR 강변도로가 텅 빈 것을 보고, 무슨 일이 또 터졌는가 하며 의아해 했다. 세계무역센터가 테러 공격으로 붕괴된후 맨해튼에 근무하는 화이트컬러층이 제2 테러를 두려워하고, 뉴욕 경찰들이 도로를 삼엄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출퇴근 시간에 엄청난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맨해튼 도로가 시원하게 뚫렸린 것은 유대인들이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뉴욕 월가에 얼마나 큰 핵심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 2001년 9월 12일자 월스트리트저널 1면 /김인영

 

9·11 테러 직후 뉴요커들 사이에는 유대인과 아랍인을 둘러싸고 온갖 루머가 난무했다. 테러 참사가 유대인 명절인 로쉬 하샤나 데이를 앞두고 계획됐다는 설, 유대인들이 명절을 보낸후 뉴욕 주가를 뛰울 것이라는 설등이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근거없이 떠돌았다.

테러리스트들이 워싱턴의 펜타곤을 공격한 것은 세계초강대국의 심장부를 겨누었다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분명했지만, 민간인들이 많이 사는 뉴욕의 고층빌딩을 타깃으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미국의 자본주의였고, 그 핵심에서 움직이는 유대인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1월 20일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차 베이징을 방문한 자리에서 “테러는 세계금융시장을 붕괴시키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회복했다. 우리는 시장에 기초한 경제시스템을 건설, 인류역사에 번영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아랍계 TV 방송에 방영된 녹화 테이프에서 빈 라덴은 유대인과 이를 보호하고 있는 미국을 공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테러는 부시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세계금융시장의 심장부인 뉴욕 월가를 강타했다. 100층짜리 고층 빌딩 두동이 무너지면서 뉴욕증시는 4일간 휴장하고, 다음주 월요일인 17일에 다시 문을 열었었다.

그러나 뉴욕에선 아랍계 테러의 공격을 받은후 유대인 큰손들이 금융시장을 통해 테러세력에 대해 반격을 가할 것이라는 미확인 루머가 돌고 있었다. 5년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주장했듯이 뉴욕 월가는 유태인에 의해 움직일 것인가.

로시 하샤나 명절을 보낸 다음주 월요일인 24일 오전 9시. 뉴욕 증시 개장 30분 전이었다. 골드만 삭스의 여성 애널리스트 애비 코언이 총대를 잡았다. 그녀는 투자자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궐기하라, 그리고 지금 주식을 사라.(Stand up, and it’s time to buy stock.)”

골드만 삭스는 19세기 미국 금융시장을 초기 정착민인 앵글로 색슨계가 잡고 있을 때 유대인들이 설립한 대표적 투자은행이며, 월가 최고의 여성 애널리스트로 꼽히고 있는 애비 코언도 유대인이다.

골드만 삭스가 나서자 뱅크오브어메리카등 월가의 기관투자자들이 뒤를 이어 주식 매입에 동참했고, 월가 투자자들이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밴드웨건(band wagon)’ 현상이 나타났다. 기관에 이어 개인들도 매수 물결에 합류했다. 여기에 미국의 애국주의가 가세했음을 물론이다.

뉴욕 증시는 코언의 신호를 계기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해 유대인들의 또다른 명절인 욤키퍼 데이(9월 29일)를 보낸뒤 본격적인 상승세로 돌아섰다. 2개월후인 11월말에는 뉴욕증시는 테러후 저점에서 20% 이상 상승하는 이른바 ‘황소장세(bull market)’에 돌입했다.

테러 직후에 뉴욕 금융시장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유대인이 집단적으로 움직였다는 미국내 보도나 증언은 없다. 다만 정황적으로 보면 미국인들이 애국심으로 단결해 테러를 극복해나가는 가운데 유대계 금융인들이 증시 살리기에 동참한 것은 분명하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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