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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晋商)②…중국 최초 금융기관 표호(票號) 창업한 뇌이태

기사승인 2017.10.08  17: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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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금 거래를 점포망을 통한 환거래 방식으로 전환…근대적 금융업 맹아

 

중국 무협지를 읽다보면 표국(鏢局)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 조직이 하는 일은 귀중품을 운반하는 것이다. 육로든, 수로든 불문하고 맡은 물건을 안전하게 수송하는 게 그들의 임무다. 그 목적읅 달성하기 위해 뜨내기 무사들을 고용한다. 여기서 혈투가 벌어지고 스토리가 전개된다.

명·청기 중국에 은본위제가 정착되면서 상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대량의 물건이 먼 지역까지 수송되고 거래되었지만, 결제 방식은 현금거래였다. 은을 수레에 싣고 가서 물건을 사오거나 물건 값으로 은을 싣고 와야 했다. 상인이 직접 은을 들고 운반하지 않을 경우 무장조직인 표국을 이용해야 했는데, 수수료가 고리대나 다름없었다. 중국에선 표국을 물류조직이라고 미화하지만, 조폭조직이나 다름없었다.

 

▲ 표국의 이동모습 /위키피디아

 

뇌이태(雷履泰, 1770~1849)는 산시(山西)성 핑야오(平遙)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그의 고향 사람이 운영하는 일승창(日昇昌)이라는 안료가게에 점원으로 일했다. 그는 경영수완이 뛰어나고 상품의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주인의 신임을 얻었다. 뇌이태는 멀리 쓰촨(四川)까지 가서 좋은 물감 소재를 구해 온 덕에 일승창의 신용과 지명도를 크게 높여 놓았다. 그런 노력의 덕택에 주인 이잠시는 뇌이태에게 일승창의 관리를 맡기게 되었다.

쓰촨(蜀)으로 가는 길은 예로부터 험난하기로 유명하다. 도적떼도 출몰했다. 은을 수레에 싣고 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표국에게 은의 수송을 맡겨도 비용이 적지 않게 들었다. 그 비용은 결국 물감 가격에 전가되었다.

뇌이태는 물감의 원가를 낮추는 방법을 고심했다. 은의 수송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길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베이징에도 진상(晋商)이 많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돈을 많이 벌어도 고향인 산시성으로 수송하는 게 번거로왔다. 직접 가져오지나 안전이 위태로웠고, 표국에 맡기자니 고리대를 뜯겨야 했다.

 

▲ 중국 최초로 금융업인 표호를 설립한 뇌이태 /위키피디아

 

그 무렵 베이징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한 진상이 있었다. 그는 또다른 진상이 하는 북경분점의 책임자와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점포는 핑야오에 본점을 두고 전국에 여러 분점을 두고 있었다.

과일장수는 고향인 핑야오에 보낼 은덩어리를 친구가 관리하는 북경분점에 맡기고 핑야오 본점에서 찾도록 편지를 쓰게 했다. 편지 한통으로 과일장수는 핑야오 본점에서 돈을 찾아 집에 가져갈수 있었다.

이런 일은 늘상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거래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친한 사이에 서로 돈을 맡기고 받아가는 흔한 일이었다. 규모가 있는 진상들 사이에는 약간의 감사의 표시(수수료)를 하고 다른 진상의 점포를 통해 돈을 부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머리 회전이 빠른 뇌이태는 이 얘기를 듣고 귀가 번쩍 트였다. 바로 이거다. 그는 이 흔한 일에서 엄청난 사업기회를 포착했다.

그는 일승창의 점포망을 통해 환거래방식을 창안해 냈다. 일승창 지점에서 은을 수령한후 그에 상응하는 표(票)를 발급하면, 일승창 어느 지점서도 그 표에 적인 금액만큼 은을 내주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그 표는 환어음에 해당한다.

그리고 일승창에서는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많이 받으면 비난을 받을 것이므로, 초기에는 거래액의 1%로 정했다.

하지만 모든 은의 교환 업무에 동일한 수수료를 매길수는 없었다. 뇌이태는 크게 세가지 기준으로 수수료를 책정했다.

① 거리에 따른다. 거리가 멀수록 수수료를 많게, 가까울수록 적게 받는다.

② 자금 여유정도를 고려한다. 작은 도시에서 대도시로 송금할 때는 수수료를 적게 받고, 대도시에서 작은 도시로 보낼 때는 수수료를 많이 받게 했다. 큰 도시에는 자금 여유가 있지만, 작은 도시에는 은이 모자랄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은을 구입하는 비용만큼의 수수료를 더 책정했다.

③ 은의 함량과 가치에 따라 수수료율을 달리한다.

 

뇌이태는 이렇게 새로운 사업 방향을 정해놓고 주인인 이잠시와 의논했다. 이잠시는 적극 찬성했다.

뇌이태는 훌륭한 경영인이었다. 그는 자금 송금이 필요한 상인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여왔다. 산시와 베이징을 본거지로 두고 중국 전역은 물론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하는 진상들이 뇌이태의 고객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가게 이름을 무엇으로 하느냐의 문제였다. 주인 이잠시가 이를 물었더니 뇌이태는 일승창으로 하자고 했다. 일승창은 안료 가게였지만, 진상들 사이에서는 명망이 있었기 때문에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자고 했다. 주인도 쾌히 승낙했다.

1823년 청나라 도광(道光) 3년에 일승창 안료장(日升昌 颜料庄)은 일승창 표호(日升昌 票号)으로 개편하며, 본격적으로 은행업에 뛰어들었다.

산시상인(진상) 뇌이태가 창시한 이 상업금융기관은 어음애 해당하는 ‘표’(票)를 발급하고 이 표에 근거해 현금을 환급하므로, 표장(票莊), 또는 포호(票号)라고 불리웠다. 표호의 출현으로 현금을 운반하던 표국을 찾는 사람들은 자연히 줄어들었고, 표호의 사업은 크게 일어났다.

 

뇌이태가 표호를 설립하자 진상들 사이에 표호 설립이 줄을 이었다. 외국인들은 주로 신시성 출신 상인들이 표호를 만들었기에 ‘산시은행’(山西银行)이라고 했다.

뇌이태의 일승창 표호는 설립 25년만에 베이징, 쑤저우(苏州), 양저우(扬州), 충칭(重庆), 삼원(三原), 카이펑(开封), 광저우(广州), 한커우(汉口), 창더(常德), 난창(南昌), 시안(西安), 창사(长沙), 청두(成都), 장쑤의 청강포(清江浦), 지난(济南, 제남), 장자커우(张家口, 장가구), 톈진(天津), 장시성(江西省)의 하커우(河口) 등 18곳에 분호(分号)를 냈다. 이어 1886에는 사시(沙市), 상하이, 항저우, 샹탄(湘潭), 구이린(桂林)의 5개 지역에 5개의 분호(分号)를 증설했다.

일승창 표호가 하늘을 날 듯 발전하자, 진상들을 중심으로 일승창(日升昌), 울태후(蔚泰厚), 천성형(天成亨), 울풍후(蔚丰厚), 울성장(蔚盛长), 신태후(新泰厚), 일신중(日新中), 엄태흥(广泰兴), 합성원(合盛元), 지성신(志成信) 등을 설립, 표호가 10여개에 달했다. 1861년엔 14개, 1862~1874년 26개, 1875~1882년 28개, 1879년 29개, 1883년 30개, 1893년 28개가 불어났다. 전성기때 분점만 해도 600여개에 이르렀다.

산시 표호는 조선의 신의주 및 인천과 일본의 오사카, 고베, 요코하마, 동경 등지에 표호를 설립하기도 했다.

 

** 뇌이태의 표호 관리 원칙

1. 영장(領莊, 지점장 격의 관리자)을 우대해 임용하고 전권을 위임한다. “임용한 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의심 가는 사람은 임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준수한다. 결손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영장의 실책이 아닌한 질책하기보다 격려해 줌으로써 심기일전케 한다.

2. 인력 채용을 엄격하게 하고, 업무기능과 직업도덕 교육을 충실히 한다. 응시자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3. 표호의 규정은 엄격히 준수한다. (주색잡기를 엄격히 금하는 규정도 있었다.)

4. 장부 관리를 엄격히 한다.

 

▲ 박물관으로 변신한 일승창 핑야오 본점 /위키피디아

 

뇌이태가 설립한 산시성 핑야오의 일승창 표호는 진중(晋中)의 민가와 상점이 결합한 건축물이었다. 일승창 정원(正院)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동원(東院)은 좁고 남북방향으로 긴 샤오콰위안(小跨院), 서원(西院)인 리중신퍄오하오(日中新票号) 등 모두 21개의 건물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일승창옛 터는 표호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진상들의 거점인 핑야오(平遙) 고성은 완벽하게 보전되어 있어 2,7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핑야오 고성 내에는 중국 최초의 현대적 은행인 '일승창 표호'가 남아 있어 '산시성 상인(晉商)'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 진상의 인력 양성과정은 지나칠 정도로 엄격해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10년 공부로 장원에 급제하기보다 10년 경상을 공부하는 것이 배나 어렵다.”

“바븐 사람은 번뇌가 없고, 한가한 사람은 성과가 없다.”

“업무 준비에 바쁠수록 업무처리가 빨라진다.”

“상품은 그 품질로 빛이나고, 사람은 그 기품으로 빛이 난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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