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그대는 "망언의 종합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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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그대는 "망언의 종합선물세트"
  • 오피니언뉴스
  • 승인 2015.09.0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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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경의 편지 "우리는 흉악한 짓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

조용경씨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본인의 양해를 받아 퍼온 글입니다.

 

조용경
1951년생, 오랫 동안 정치 활동과 경제인을 함께 했다. 현재 인천 송도에 거주하며 강원도 춘천에 농가주택을 개조해 전원 생활을 겸하고 있다. ►포스코엔지니어링 상임고문 ►포스코엔지니어링 대표이사 부회장 ►한국트라이애슬론연맹 부희장 ►포스코건설 부사장 송도신도시개발 사장 ►한국공정거래협회 하도급분쟁조정위원원 ►포스코개발 전무이사 ►민주자유당 총재비서실 차장 ►도서출판 한송 대표 ►한국은행 조사부

 

그간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과 관련된 모든 현안에 대해 늘 악담과 망언을 일삼아 온 일본의 언론이 바로 '산케이(産經)' 신문이며, 그 대표가 전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黑田 勝弘)'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산케이'가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과 관련하여 또다시 지극히 고약하고 방자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리고는, '기사를 내리라'는 우리 정부의 요구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평소 일본과의 우호관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최근 아베 수상을 비롯한 극우세력의 신군국주의화 망동과, 그 전면에 나서서 깃발을 흔들어대는 '산케이' 같은 찌라시 언론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비록 은퇴하고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일개 시민에 불과한 입장이지만, 며칠간 곰곰히 생각을 하던 끝에 '망언의 종합백화점' 격인 '구로다'를 향해, 아니 미친 '산케이'를 향해 공개적으로 이 글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구로다 가쓰히로(黑田 勝弘) 선생 귀하!>

 

구로다 선생! 역시 귀하가 몸 담고 계신 ‘산케이’는 달랐습니다.

한동안 음으로 양으로 자행된 귀국의 중국 전승절 참석 방해 책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을 결정했을 때, ‘일본으로부터 또다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터무니없는 모욕이나 모략이 가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의 그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았고, 이번에도 그 깃발을 든 것은 역시 귀하가 해 있는 ‘산케이’ 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평소 귀하가 몸 담고 있는 ‘산케이’의 한국에 관한 기사에 대해서는 '산케이'가

일본의 대표적 ‘찌라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원래가 일본용어라고 알고 있는데, 귀하께서는 한국에 오래 거주하셨으니 ‘찌라시’라는 표현의

한국적 함의(含意)도 잘 아시겠지요.

사전에 보면 ‘찌라시(散,chirashi)란 ’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 쪽지 혹은 낱장 광고‘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만, 그건 사전적 의미이고 실제로는 ’타인을 음해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하여 기사 형태로 기록한 자료‘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작년 세월호 사건 이후 ‘산케이’가 쓴 박 대통령에 관해 쓴 지극히 저급하고 졸렬한 기사에 못지 않게, 이번에는 너무도 몰상식해서 한국인의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더럽고 야수적인 표현을 지면에 올렸습니다.

얼마 전 ‘산케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70주년 전승절 열병식 참가를 ‘사대주의’라고

헐뜯으면서 한국은 “이씨 조선 말기에 내외 정세 변화 때마다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러시아로

사대주의 대상을 가볍게 바꿨다”고 주장하고는 “그 DNA를 계승한 한국이 이씨 조선을 연상시키는 사대주의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고 단말마적 비명을 내질렀습니다.

그리고는 “이씨 조선에는 박 대통령과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 제26대 왕 고종의 비, 민비”라고 하고는 “민비가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하고 3개월 후 암살됐다”고 저주에 가까운 기사를 썼습니다.

귀국 수상 '아베'의 손길을 뿌리치고, 중국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서서 악수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상상만 히도 죽이고 싶도록 밉다는, 배가 아파 어쩔 줄 모르는 상당수 일본인들의 심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산케이’의 오만방자하고, 북한식 표현으로는 ‘무엄하기’

짝이 없는 치기어린 장난질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종의 쾌감을 느꼈습니다.

이번 ‘산케이’의 기사는 뒤집어 보면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가 결정에 대한

‘아베’를 비롯한, 극우파 일본인들의 낭패감과 열등감이 얼마나 컸던가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현상의 하나였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구로다' 선생보다는 연배가 한참 아래인 탓도 있습니다만, 은퇴한 지 한참 되는 지금도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치기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특히 일본이 국제관계의 질서 속에서 열패감을 느끼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굳이 ‘쾌감’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뒷부분에서 아시게 될 것입니다.)

 

구로다 가쓰히로 선생!

도대체 당신네들이 얘기하는 ‘민비(閔妃)’가 누구며, 어떻게 살해 당한 분입니까?

그분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정실부인이신 명성황후(明成皇后)이십니다. 19세기 말, 한국 병탄의 야욕에 불타고 있던 당신네 일본은, 명성황후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조선침략의 야욕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었다지요.

그래서 1895년 10월 8일 ‘미우라’ 공사의 지휘하에 일본에서 데려온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여우 사냥’이라는 작전을 통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그 시신에 대해서까지 결코 용서받을 수없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당시 당신네 나라의 수상이자, 한국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당신네 입장에서는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겠지만) “조선 국모의 위대함에 놀랐고,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그녀를 시해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을 남겼으니, 그 사실은 귀하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 간의 근세사에 그러한 아픔이 있었음에도 스스로 ‘일본의 대표언론’이라고 자처하는 ‘산케이’가 언필칭, 조선을 ‘이씨조선’으로, 명성황후를 ‘민비’로 폄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뭐라고 변명을 하든, 그건 결국 스스로 당신네들의 역사적 ‘죄과’와 그에서 비롯된 ‘죄책감’을 위장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도둑의 ‘저린 발’은 제대로 죄값을 치루지 않는 한 결코 그대로 편안해질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그 명성황후에 비유하면서 “민비가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하고 3개월 후 암살됐다”라고, 마치 그 암살에 당신네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결코 용남될 수 없는, 어쩌면 명성황후 시해에 버금가는 ‘펜에 의한 인격살인’에 준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산케이’는 정말 나쁜 신문이고, 그 기사를 쓴 사람, 그 기사를 편집해서 실은 사람 모두 참으로 뻔뻔스러운 인간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당신네들을 향해 점잖게 항의하고 ‘기사를 내리라’고 요구했지만,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집단인 당신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산케이는 한국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을 모욕할 목적으로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가를 ‘사대주의 방식'의 외교라고 비난 했습니다.

도대체 사대주의라는 말뜻을 알기나 하고 그런 표현을 한 것인지 묻고 싶네요.

사대주의라 함은 "주체성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나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태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전후 사과 문제와 관련하여 과거 귀국이 피해를 준 상대 국가들 가운데,

귀국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 중국에 대해서는 눈치를 살피며 적당히 사과를 하고, 반면 당신네들이 좀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에 대해서는 사과를 외면하는 귀국 정부의 자세야말로 진짜 '사대주의 방식'이고 '양두구육 방식'의 외교임을 똑똑히 인식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국 정부가 선택한 결정은 사대주의 방식이 아니라 다소 껄끄러운 미국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국익을 위해 우리 스스로 선택한 '자주적 외교'의 방식이었습니다.

 

구로다 선생!

기록을 뒤져보니 선생께서는 긴 세월에 걸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에 관해 할 수 있는 망언이란 망언은 다 하셨더군요. 가히 ‘망언의 종합선물세트’가 바로 귀하였습니다.

사실 긴 세월에 걸쳐 ‘산케이’에 게재된, 한국에 관한 나쁜, 그리고 악의적으로 조작되거나 왜곡된 기사는 거의 대부분 귀하가 직접 집필했거나 귀하의 영향력 하에 쓰여진 글이라 해도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적어도 한국을 무시하고 한국을 욕보이는 ‘산케이’의 대표자는 바로 귀하라는 판단을 가지고 한국의 일개 시민인 제가 오늘 이 글을 씁니다.

지난 2010년 8월14일, 선생은 우리의 광복절을 가리켜 '일본이 한국에 베푸는 은혜를 중단한 날'로 묘사하고는, "한국은 자주독립을 하지 못한 탓에 일본을 향해 끊임없이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셨더군요. 지나가는 강아지가 들어도 웃을 내용입니다.

당시 제가 만난 일본의 한 기업인은 당신을 가리켜 “그 친구 정신 나간 사람” 이라며 “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다”고 얘기해 주더라구요.

2010년에는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으로 셰계인의 호평을 받고 있는 비빔밥에 대해 "겉으론 예쁜

모양이지만 실제 먹을 때는 엉망진창인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며 "한국인들은 뭐든지 섞어서 먹는 버릇이 있다"고 비꼬셨더군요. 소문에 들으니 귀하도 비빔밥을 종종 먹는다고 하던네,

그렇다면 귀하도 역시 그 구(狗)의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라고 생각해도 괜찮겠지요.

지난 해 여름에는 “대외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위안부'다. 매일 위안부 뉴스가 안 나오는 날이 없을 정도다. 유엔이 '위안부'를 '성 노예'로 부르라고 했지만 정작 할머니들이 싫어한다. 노예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일 것"이라고도 하셨더라구요?

그 당시 어느 SNS 상에 제가 “구로다 선생! 귀하의 어머니는 ‘성 노예’가 아니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고 썼다가 다음 날 지워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성 노예가 아니었던 걸 스스로 알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그런 표현을 싫어할 것’이라는 얘기는 지극히 가까운 주변인의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면 알기 힘든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렇게 썼지만, 그냥 두면 저 스스로 귀하와 같은 부류가 될까 두려워서 지워 버렸습니다.

 

구로다 선생!

제가 알기로는 식민시대가 끝난 이후로 귀하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오래 거주한 일본인의 한 사람이며, 그래서 스스로 지한파(知韓派)로 행세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만약 그런 귀하에게 털끝만큼의 인간적인 예의와 양식이 남아 있다면, 귀하가 그토록 오래 거주한 한국에 대해, 그리고 한국계로 알려진 귀하의 부인 ‘구로다 요코’ 씨의 조상의 나라에 대해 그토록 몰상식한 표현으로 욕보이는 짓은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아내의 친정나라를 욕하고 짓밟는 행위는 지극히 패륜적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저급한 행위라는 사실을 귀하도 모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건 귀하의 가정사에 속하는 일 같아서 더이상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2011년 4월 초에 귀하는 산케이에 쓴 ‘일본침몰론의 쾌감’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국은 예로부터 일본침몰론을 어주 좋아한다”라며 “이 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코마츠 사쿄’의 소설도 번역 출판됐고, 최근 같은 제목의 일본 영화도 재빨리 수입되어 상영됐다. 한국 언론들도 ‘일본 침몰’이라면서 쾌감을 즐겨 왔다." 라고 주장한 적이 있지요?

귀하의 얘기대로 일본인이 쓰고, 일본인들에 의해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을 번역 출판하거나, 그와 같은 제목의 일본 영화를 수입 상영하는 것이, 그리고 언론이 그걸 기사로 쓰는 것이 귀하의 주장대로 ‘일본 침몰론’에 대해 쾌감을 즐기는 행위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일본 최고의 SF 작가가 ‘일본 침몰’이라는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일본 내에서만 700만의 관중을 동원하는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하실 건가요?

또 영화가 개봉된 이후 한동안 주식시장에 파동이 일어나고, 이민자가 속출하는 등 ‘일본 침몰’ 영화의 파장으로 인해 적지않은 수의 일본인이 죽음의 공포로 허우적거렸던 현상은 무엇이라고 설명하실 건가요.

그 소설가나 영화제작자, 혹은 그걸 보고 재미있다고 박수를 친 당신네 일본인들은 스스로 자기 나라의 침몰에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들인가요, 아니면 일종의 지적 매스터베이션을 즐기는 천박한 사람들인가요?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귀하의 어거지 논리를 그대로 흉내 내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에 도달하네요.

 

구로다 선생!

혹시 그 영화 직접 보셨던가요?

일본열도의 침몰과 일본의 소멸이 기정사실로 되면서, 일본 정부가 세운 'D계획'의 최우선 목표는 일본인을 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이 해외로 탈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수천만 명의 '난민'을 받아 줄 만한 나라는,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그건 단순히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당신네 수상이 주장하는 바처럼 근세에 들어 주변국가들에게 베푼 일본의 덕(德)이 그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혹시라도 해보지 않으셨는지요...

귀하는 위에 언급한 칼럼에서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 “한국 언론이 앞장 서서 캠페인을 해서 모금을 많이 했지만... (중략) 일본이 '침몰' 위기인 이때 한국이 영토 문제에선 일본에 양보하면 어떨까?” 라는 표현으로 우리 국민을 조롱했습니다.

뭐 어차피 귀하같은 사람의 소리니 개의치 않을 생각입니다만,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걸 원하는 건 절대로, 절대로 아니지만, 소설이나 영화에서와 같은 일이 만의 하나라도 일어나는 경우 조각배를 타고 현해탄을 표류하는 '살아 남은' 일본 난민들에게 가장 먼저 구호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나라는 그래도 이웃한 우리 대한민국일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건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라 바로 그게 일본과는 달리 아무리 미워도 약자를 긍휼히 여길 줄 아는 한국인의 기본적인 심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귀하의 그 현란한 필치로 이런 제 생각을 ‘산케이’ 머릿 기사로 한 번 써주시는 건 어떨까요.

구로다 선생!

우리 한국인들은 아무리 마음이 불편해도 귀하에게 관동대진재 당시 귀하의 동족들이 우리 한국인들에게 한 것과 같은 흉악한 짓을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밤 길 걷는 일일랑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고, 귀하가 살고 싶어하는 그 대한민국에 오래오래 살면서 좋아하는 한국의 ‘술 문화, 밤 문화’를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건강과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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