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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개최지 팔렘방은 고대 해상제국의 수도

기사승인 2018.08.18  13: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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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인도 연결하는 무역 중심항구…한때 동남아 불교의 전파지

 

18일 제18회 아시안게임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와 옛수도 팔렘방에서 막을 올렸다.

자카르타가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팔렘방은 어떤 도시일까.

팔렘방(Palembang)은 인구 108만명으로, 인도네시아에서는 9위, 수마트라섬에서는 2위의 도시다. 인구 2억의 인도네시아 정부가 그 많은 도시 가운데 팔렘방을 아시안게임 공동개최 도시로 선택한 것은 자국의 역사가 깊고 한때 동남아시아 해상을 장악했음을 알려주기 위한 것으로 볼수 있다.

 

중세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하나의 왕조가 통치하는 나라였다. 근대에 들어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독립과정에서 별개의 나라로 분리되었다.

팔렘방은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통치하던 스리비자야(Srivijaya) 왕국의 수도였다. 통치기간은 650년에서 1377년.

왕조가 만들어진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 신라 진덕여왕, 고구려 보장왕, 백제 의자왕의 시기로, 삼국시대 말기였다. 중국은 당 고종 시대, 일본은 다이카(大化)개신을 할 때여서 이제 막 국가체제를 갖추던 시기였다. 이 왕국이 망한 시기는 중국에선 명(明)나라 홍무제, 한반도에선 고려 우왕 때였다. 따라서 스리비자야 왕국은 우리 역사에서 통일신라에서 고려 시대와 겹치는 700여년 동안에 말레이 반도와 순다 열도를 지배하는 거대한 해상제국을 형성했다.

 

▲ 스리비자야왕국의 통치범위와 해상무역로 /위키피디아

 

스리비자야 왕국은 9~11세기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수도 팔렘방은 동남아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중국·인도 및 동남아시아 각지와 교역하고, 우리나라의 탐라국(제주도)과 교류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 섬은 고대부터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인도를 연결하는 동서 해상교역로로서 지정학적 이점을 누리고 있었다. 팔렘방은 수마트라 섬 남동쪽 무시 강 어귀에 위치하고 있다. 지명은 '하천이 모이는 곳' 또는 '하천의 충적지'라는 뜻으로, 고대로부터 항구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스리비자야는 7세기부터 이 해상교역로를 장악하고, 말레이 반도와 자바 섬도 지배했다. 왕국은 팔렘방에 좋은 항만 시설을 제공하고 시장을 열어 교역선들을 유치했다.

수도 팔렘방은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 섬 사이의 믈라카 해협과, 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 사이의 순다 해협 등 동서 항해의 두 주요 항로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왕국의 강한 해군력으로 동서 간을 이동하는 모든 선박을 통제하며 해상교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 네덜란드 지배하의 팔렘방 그림 /위키피디아

 

중국 「신당서」(新唐書)와 「송사」(宋史)에서 스리비자야는 '삼불제‘(三佛齊) 또는 '실리불서(室利佛逝)' 등으로 표기되어 중국과의 내왕이 기록되어 있다.

당(唐)나라 시절엔 의정(義淨, 635-713)이라는 유명한 승려가 인도에서 공부하러 오가면서 스리비자에 몇 년간 머물렀던 기록을 자신의 여행기 「남해기귀내법전」(南海奇歸內法傳)와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남겼다.

그 내용을 보면 의정(義淨)은 광저우(廣州)에서 페르시아 배를 타고 약 20일 걸려 수마트라에 도착했다. 팔렘방에서 그는 6개월간 머물며 장차 학업에 필요한 산스크리트어를 익힌 후 인도로 갔다. 의정의 관찰에 따르면, 성채로 둘러싸인 도시 스리비자야에는 약 일천 명의 불승들이 있었다. 불승들의 경전 내용이나 의식이 중국과 별 차이 없었다고 한다.

의정의 기록에 따르면, 팔렘방은 무역선들의 기착지였고 불교의 중심지였다. 의정은 도자기, 진주, 비단 등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며, 장뇌, 백단향, 향료 등이 몰루카스로부터, 면직물은 인도로부터 수입되면서 거래되고 있음을 기록했다.

의정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는 이곳을 거쳐 간 신라승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팔렘방은 불교문화의 중심지로서 당나라 또는 신라 승려들이 인도로 순례를 떠나 전에 머물며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는 것이 곳이었다.

 

스리비자야 왕국은 1025년 인도 촐라 왕조의 침략을 받아 쇠약해졌고, 수도 팔렘방도 수탈을 당했다. 왕국은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농업 국가로 전환하면서 급격하게 세력이 약화되어 소국으로 전락했다.

13세기 말 자바섬을 거점으로 마자파힛(Majapahit) 왕조가 일어나면서 더욱 위축되었다. 이때부터 열도의 중심지는 수마트라에서 자바섬으로 바뀌었다.

15세기 초에는 진조의(陳祖義)가 이끄는 중국 해적단에게 점령당하기도 했다. 16세기에는 자바섬 북부에서 번성한 데막(Demak) 술탄국의 지배를 받았다. 데막 술탄국 붕괴된 뒤 1659년 팔렘방 술탄국이 세워졌지만, 네덜란드가 진출하면서 1617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교역소가 설치되었다. 1825년 팔렘방 술탄국은 네덜란드에 의하여 폐지되었다.

네덜란드 지배하에 팔렘방은 경제의 중심지로 떠올라 고무 재배의 중심지가 되었고, 1900년대에 유전이 개발되어 석유회사들이 들어섰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으로부터 석유금수조치를 당한 일본이 팔렘방 유전에 눈독을 들여 1942년 이 곳을 점령했다. 이 곳의 원유생산량은 일본의 당시 소비량을 넘었다고 한다. 2차대전 후 인도네시아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에 비해 자카르타는 네덜란드 식민자들이 개척한 도시다.

자카르타엔 16세기경 서부 자바의 파자자라는 왕국이 있었지만, 그다지 큰 세력은 아니었다.

16세기말 자바에 진출한 네덜란드인은 지리적 위치가 뛰어난 점에 주목했다. 초대 동인도 총독 쿤(Coen)은 자카르타 리웅강 하구에 성채를 건설하고 운하를 만들어 시가를 조성했다. 네덜란드인들은 본래 이름인 순다클라파(Sunda Kelapa)를 바타비아(Batavia)라고 개명하고, 그곳을 식민지배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후 식민도시로 크게 번성했다. 1942년 일본이 점령한 후 지금의 자카르타(Jakarta)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 1830년대 족자카르타와 수라카르타 /위키피디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족자카르타(Yogyakarta)라는 고도(古都)가 있다. 불교사원과 힌두사원들이 많이 있어 한국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관광지다.

네덜란드가 점령하기 이전에 자바섬에는 여러 왕조가 권력투쟁을 벌였다. 1575년 마타람 (Mataram) 왕조가 이슬람을 등에 업고 부흥하면서 족자카르타를 수도로 삼게 되었다.

17세기 이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자바섬을 야금야금 잠식해 오자, 마타람 왕국 내부에 분열이 생겼다. 네덜란드 식민자에 협조하자는 파와 저항하자는 파로 갈리었다. 네덜란드에 협조적인 파쿠부워노 2세(Pakubuwono II)가 술탄(왕)에 오르자 동생인 망쿠부미(Mangkubumi)가 반란을 일으켰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개입했다. 3자가 회담 끝에, 남쪽 족자카르타는 동생에게, 북쪽 수라카르타(Surakarta)는 형에게 넘기기로 협정을 맺었다. 마라탐 왕국이 두 나라로 쪼개진 것이다. 이후 족자카르타의 왕은 술탄(sultan)이라는 칭호를 이어갔고, 북쪽의 수라카르타는 수난(sunan)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네덜란드 통치시절에도 자치를 얻었다.

2차 대전이 끝나 일본이 패주하자 1945년 8월 독립운동의 영웅 수카르노(Sukarno)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때 족자카르타의 술탄 하멩쿠부워노 9세(Hamengkubuwono IX)는 수카르노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인즉 인도네시아 공화국을 인정할 터이니, 족자카르타의 자치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 북쪽에 있던 수르카르타의 지배자도 마찬가지로 청원을 했다.

수카르노는 허락했다. 족자카르트와 수라카르타 두 왕국을 연방 내 특별행정구로 편입하되, 독자적인 자치권을 형성한다는 조건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좌파들이 왕국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나왔다. 이리하여 수라카르타는 좌파들의 반대로 자치를 얻지 못하고, 족자카르타만 특별행정구로 떨어져 나가 술탄의 지배하에 자치가 허용되었다.

 

▲ 인도네시아 영토 /위키피디아

 

인도네시아 입장에서 자카르타는 식민지 지배의 상징이다. 족자카르타를 지배한 마타람 왕조의 영역은 자바섬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팔렘방을 수도로 한 수리비자야 왕국은 인도네시아 열도와 말레이시아를 지배하고 동남아 무역권을 장악했다. 인도네시아로선 자랑스런 역사가 팔렘방인 것이다.

인도네시아가 아시안게임을 치르면서 팔렘방을 내세운 것은 과거에 찬란한 고대왕국의 영광을 미래에 펼쳐가겠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읽힌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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