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에르도안의 권력독점이 빚은 터키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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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에르도안의 권력독점이 빚은 터키 위기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14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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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과 언론 탄압, 정실 인사, 대형 토목공사, 막대한 대외부채 등…

 

터키 경제위기는 표면적으로는 앤드류 브런슨(Andrew Brunson)이라는 미국인 목사 석방을 둘러싸고 도널드 트럼프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사이에 벌어진 대립관계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21세기에 술탄이 되려는 에르도안의 장기집권욕에서 빚어졌다. 에르도안이 야당을 탄압하고, 경제를 대통령 일가가 장악하고, 대형건설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터키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시장경제는 왜곡되었다. 설령 터키 정부가 미국인 목사를 석방하더라도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남아 신흥국 위기에 흽쓸릴 우려가 높다.

뉴욕타임스는 14일자에서 “터키 통화위기는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접근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헤드라인을 달았다. 뉴욕타임스는 기사에서 “에르도안은 지난 6월 선거에서 술탄과 같은 권력을 가지고 재집권하기 앞서 운하를 비롯해 대형 프로젝트로 경제 발전을 지속시킴으로써 인기를 유지해왔지만, 예산을 장악하고, 정실주의와 부패로 만연해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 자료: CEIC

 

작금의 터키 통화위기는 지난 6월 대선에서 에르도안이 대통령으로 재선되면서 시작되었다.

그에게는 경축할 일이었지만, 국제금융시장의 참여자들은 그의 재집권을 불안하게 보았다. 에르도안은 경제를 수술하기보다는 대중에게 인기있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취했다. 그는 보스포러스 해협 다리건설, 터널공사등을 추진하면서 과도하게 외채를 들여오고 통화를 남발했다. 그 결과는 두자리수의 인플레이션과 외채누적이었다.

재집권에 성공한 에르도안은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금리인하를 단행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긴축재정과 금리인상에 반대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개입하고, 심지어 재무장관에 자신의 사위인 베라트 알바이라크(Berat Albayrak)를 지명했다.

반응은 곧바로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나타났다.

무디스는 지난 3월에 터키 국가신용등급을 'Ba1'에서 'Ba2'로, S&P는 지난 5월에 등급을 'BB/B'에서 'BB-/B'로 각각 하향조정한데 이어 피치마저도 7월에 'BB+'에서 'BB'로 낮췄다.

그런데 이 모든 등급이 투자부적격 등급이라는 점이다. 정크본드, 즉 터키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쓰레기로 간주하는 등급이다.

대통령 선거과정, 선거 이후에 에르도안이 보여준 경제정책에 국제신용평가기관 세군데 모두 실망감을 표시한 것이다. 리라회 하락은 연초부터 시작되었지만, 6월 에르도안에게 술탄의 권력을 부여한 대선 이후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 제3 보스포루스대교인 야부즈 술탄 셀림 교 /하이델베르그 그룹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의 통계에 따르면 터키의 대외채무는 올해 3월말 기준으로 4,667억 달러에 달한다. 에르도안 집권 전인 1989년 1,947억 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두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2017년말 기준으로 대외채무는 GDP 대비 53.3%에 이른다.

무역적자 폭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수출 1,571억 달러, 수입 2,342억 달러였다. 지난해 무역적자는 771억 달러로, 2016년에 비해 37.5% 확대되었으며, 수출액의 절반에 가깝다. 

무역적자는 커지고, 해외차입으로 국내 대형토목공사를 하다보니, 대외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연초만 해도 해외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터키정부는 국채에 14%의 고금리를 적용했다. 일본 엔화자금이 대거 들어갔다. 지금은 국채금리가 20% 이상 올랐다. 이런 고율의 수익률을 주면 들어갈 사람은 있겠지만, 조그마한 정치불안이나 경제 동요가 발생하면 언제라도 투자자들은 채권을 던질 가능성이 높다.

그는 독실한 이슬람이다. 그의 종교관은 시장의 논리와 배치된다. 지금처럼 외화자금이 빠져나갈때엔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자를 '만악의 근원'이라며, 금리 인상을 죄악시하고 있다. 중앙은행을 통제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 자료: Trading Economics

 

이런 상황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해 야당을 통제하고 언론을 옥죄며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미국인 목사 억류사건이 발생했다. 브런슨 목사가 연계되어 있다는 망명 종교지도자 펫흘라흐 귈렌은 그의 정적이다. 

에르도안은 2003년에 터키 총리에 올라 11년간 총리직을 수행한데 이어, 2014년에 대통령에 당선돼, 지금까지 15년간 집권했다.

지난 2016년 7월에 터키에서 에르도안에 반대하는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는데, 그는 쿠데타 배후인물로 펫훌라흐 귈렌을 지목했다.

귈렌은 한때 에르도안과 동지였다. 귈렌은 에르도안 집권 초기에 권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줬다. 굴렌은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AKP)을 지지했고, 그의 추종자들은 AKP에 대거 입당해 검찰, 재판부, 경찰등의 보직을 맡아 정의사회 실현에 힘썼다.

터키를 장기집권한 AKP당에는 기업인이 많이 입당했고, 굴렌주의자들은 행정직을 맡고 있었다. 정권이 오래가면 부패가 발생한다. 에르도안 정권에 대형 부패사건이 발생하면서 에르도안 지지세력과 굴렌 지지세력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굴렌 지지자들은 부패세력을 단죄하려 움직였고, 정권은 굴렌주의자들을 힘으로 억압했다.

2013년 12월 터키 경찰은 정부의 공공입찰 과정에 개입해 뇌물을 받은 3개 부처 장관의 아들들을 체포했다. 당시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 기업인 약 20명이 전격적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총리였던 에르도안과 귈렌 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댜. 경찰에 포진한 굴렌주의자들과 에르도안 정권의 물적 후원자였던 기업인 사이에 갈등이 터져나온 것이다. 귈렌은 당시 미국에 은신했지만, 터키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에르도안은 귈렌의 기반인 사립학교를 폐지했고, 이에 반대하는 귈렌파 경찰들이 에르도안 정권의 약점인 부패사건을 파헤쳤다는 해석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미국에 있는 귈렌의 추종자들이 사법부와 경찰 부서에 침투, 권한을 이용해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후 터키 정부는 수도 앙카라에 근무하고 있던 350명의 경찰관들을 해임하거나 전보조치를 단행하며 보복을 가했다.

2014년 8월, 에르도안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미국에 망명한 귈렌을 본국으로 인도하는 것을 추진하는 한편, 대통령에 비판적인 언론인 24명을 체포했다. 체포된 사람들은 굴렌의 강력한 지지자들이었다.

에르도안 정부는 2005년 10월엔 반정부 성향의 언론사를 경찰을 투입해 급습하기도 했다. 2016년 3월에는 터키 최대신문사 ‘자만’이 강제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경영난때문이 아니라, 자민이 테러를 모의하고 테러조직을 도왔다고 법원과 검찰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은 지난 6월 재선에 성공한 이후 쿠데타 이후 선포한 국가비상사태를 연장하고, 국민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법제화했다. 이 법에 따르면 사법당국은 범죄사실 소명 없이도 테러 용의자를 나흘간 구금할 수 있다. 특수한 상황에서 구금 기간이 연장될 수 있어 구체적인 근거 없이도 장기간 인신 구속을 할 수 있다. 일몰 후 옥외 집회도 제한된다.

언론인에겐 터키는 대형 감옥이다. 지나 6월 기준으로 언론인이 120명 이상 투옥되고, 폐간된 언론사도 180곳이 넘었다. 에르도안이 대통령 취임 전날인 7월 8일 무더기 해고와 폐간을 단행, 해고·직위해제 인원은 약 18만명으로, 폐쇄 언론사는 200곳으로 각각 늘었다.

국제금융시장의 관심은 이슬람 왕조국가를 복원해 술탄이 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경제를 자기 방식대로 움직여 나가는 것을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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