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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8월 4일] 영국의 지브롤터 점령

기사승인 2018.08.03  19: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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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과 아프리카, 지중해와 대서양 연결하는 거점…영국-스페인 300년간 분쟁

 

18세기가 시작된 1701년부터 1714년까지 13년간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스페인 왕위를 놓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른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다.

“짐이 곧 국가”이던 시절에 왕 또는 영주가 되면 당연하게 모든 영토와 국민을 소유하게 된다. 왕족과 귀족들은 영토와 재산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서로 복잡한 결혼관계를 유지했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가 후계자 없이 죽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왕을 내세우며 한판의 세계 대전이 벌어졌다. 이때 프랑스와 스페인이 한 편이었고, 영국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 또다른 한편이었다.

1704년 8월 4일 조지 루크(George Rooke)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 22척이 스페인 남단 지브롤터(Gibraltar)에 함포사격을 가한후 병력을 투입해 점령했다. 이날 전투에 영국은 스페인의 앙숙인 네덜란드 해군의 지원을 받았다.

면적은 6.8㎢로 여의도 두배쯤 되는 돌출부 지형이다. 스페인의 입장에선 영국이 턱 밑에 칼을 들이밀고 있는 양상이 되어 버렸다. 영국 해군이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이후 세계 바다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은 자신의 영토에 붙어 있는 이 자그마한 혹부리를 되찾지 못했다. 1713년 7월에 체결된 유트레히트 조약에 의해 펠리페 5세가 스페인 국왕으로 인정받게 되지만, 지브롤터는 영국에 떼주고 말았다. 임금 자리와 영토를 바꾼 셈이다. 그부터 지브롤터는 영국령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 지브롤터 전경 /위키피디아

 

지브롤터의 역사는 기원전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950년 지중해 해상국가 페니키아가 최초로 거주지를 만들었고, 그리스 시대에는 ‘헤라클레스의 기둥’(Pillars of Hercules)으로 알려 져 있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지브롤터는 세계의 끝이었고, 그 너머 대서양으로 가면 배가 추락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카르타고와 로마 시대에 지브롤터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거점이 되었다.

중세에 접어들어 711년에 이슬람교도 타리크가 무어인을 거느리고 이곳을 점령하고, 이를 거점으로 스페인으로 쳐들어갔다. 스페인이 오랫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고, 이 곳을 둘러싸고 스페인과 이슬람교도 사이에 오랜 공방이 이어졌다.

 

▲ 위키피디아

 

이 돌출부에서 지리적으로 지중해와 대서양을 있는 좁은 해협을 건너면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가 나온다. 아프리카와 유럽대륙을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역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 왔다.

영국이 이 곳을 전리품으로 획득한 이후 300년간 영국과 스페인은 영토 분쟁을 벌여왔다. 스페인은 끊임없이 지브롤터 반환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영국은 1830년 3월 지브롤터를 영국령 식민지(Crown Colony)로 편입시켰고, 1946년 5월 영국은 영국령 해외영토(Overseas Territory)로 규정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의 아프리카 작전기지가 되어 독일 공군의 폭격을 당하기도 했다.

1969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은 지브롤터 국경에 봉쇄조치를 단행하기도 했지만, 프랑코 사후 1983년 이 조치를 해제했다.

최근들어 지브롤터를 놓고 영국과 스페인 사이에 한판 설전이 벌어진 적이 있다.

발단은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였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지난해 4월 회원국에 보낸 서한에서 “스페인의 동의 없이 EU와 영국 간에 맺어지는 어떤 협정도 지브롤터에 적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즉 지브롤터에 대해 스페인에게 거부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영국이 발끈했다. 영국 집권보수당의 마이클 하워드 전 대표는 전쟁도 불사하겠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스페인 외무장관이 “영국에서 나오는 발언의 톤에 놀랐다"며 물러섰다.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도 격앙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일단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언젠가 다시 불거질 이슈다.

 

▲ 위치 /위키피디아

 

이 작은 영국 영토에는 해협을 마주보며 깎아지른듯한 바위산이 서 있다. 최고 높이 425m. 길이 4km, 너비 1.2km의 반도형 돌출부는 해발고도 300m의 석회암 암봉이 이어져 있으며, 평지 부분이 거의 없다.

바위산의 절벽과 급사면 위에는 해군기지가 구축되어 있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바위산의 일부를 깎아 비행장을 만들었다. 또 해면을 간척해 평지를 확대하고, 바위산을 뚫어 요새를 강화했다. 바위 서쪽에 항구를 만들어 군항 및 자유무역항으로 활용되고 있다.

강이 없기 때문에 바위산 동쪽 사면에 대형 지하 저수시설을 만들어 해수를 담수화해서 저장하고 있다.

인구는 대략 3만명이다. 주민의 83%가 현지 지브롤터인이며, 영국인 10%, 모로코인 3.5%, 스페인인 1.2% 등이다. 지브롤터인 가운데에는 영국계가 27%, 스페인계가 24%, 이탈리아계가 19%, 포르투갈계가 11%, 몰타계가 8%, 유대계가 3%를 차지하고 있다.

영어가 공용어다. 스페인어와 아랍어 사용자도 일부 있다.

현지인의 대부분이 영국령으로 남기를 원하고 있다. 2002년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유권자의 99%가 압도적으로 영국-스페인 공동주권 구상을 거부한 바 있다.

하지만 2016년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지브롤터인의 96%가 브렉시트에 반대했다. 현지인들은 영국에 남기를 원하면서도 유럽 대륙 끝자락에서 EU에 잔류하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다.

국경 넘어 스페인 지역에선 매일 1만명 가량이 출퇴근한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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