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는 기자 야스다는 왜 한국인이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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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는 기자 야스다는 왜 한국인이라 했을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0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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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이자 최장기 체포…동영상 공개되자 일본에서 시끌

 

“내 이름은 우마루(ウマル)입니다. 한국인입니다. 지금은 2018년 7월25일입니다. 상당히 나쁜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도와주세요"

3년전에 취재차 시리아에 밀입국해 무장단체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야스다 준페이(安田純平) 기자로 보이는 동영상이 31일 공개되어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주황색 죄수복을 입고 텁수룩한 수염의 남성 뒤에는 검은색 복면을 한 두명이 실탄을 장전한 기관총을 겨누고 있었다. 동영상 제목은 ‘일본인 인질’이라고 되어 있는데, 동영상 속의 남성은 일본어로 말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우마르’라며 한국인이라고 했다.

이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일본에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동영상 속 인물은 야스다 준페이가 분명한데, 한국인이라고 말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왜 우마르(우말)이라는 이름의 한국인이라고 했을까. 한자식 표기인 安田純平을 한국이름으로 풀면 안순평이니, 한국계 이름과 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기록 어디에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여지껏 드러나지 않았다. 재일교포 2세일까. 이중국적자일까.

일본 인터넷에선 야스다로 추정되는 동영상이 공개되자 야단이 났다. “야스다가 한국인이라면 일본 정부는 손을 떼고 한국 정부가 책임져라”, “그가 이중국적자이면 불법이다”, “그는 자진해서 인질이 되는 상습법이다” 등등….

 

▲ 31일 공개된 동영상 속 인물이 야스다 준페이로 추정된다. /동영상 캡쳐

 

야스다 준페이. 1974년 3월 16일생으로, 현재 나이 44세다. 그는 유명한 전쟁기자로,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 그의 항목이 따로 등재되어 있다. 2015년 5월 21일 이라크에서 마지막 트윗을 날린후 그는 3년째 실종된 기자다. 그동안 공개된 영상자료를 통해 그는 이라크의 알카에다에서 떨어져 나간 분파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다.

그는 전쟁 기자로서 몸을 아끼지 않고 전쟁 현장에 뛰어다니다 숱하게 체포된 기록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실종을 테러리스트에 의한 구금이라고 본다면 그는 다섯 번째 체포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겁 없는 기자이기도 하고, 또다른 측면에선 무모한 기자이기도 하다. 그의 기록을 간략하게 취재해보자.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밝혔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태어난 곳은 일본 중부 사이타마(埼玉)현 이루마(入間)시다. 대학을 졸업한후 1997년 곧바로 나가노현의 지방지 신노마이니치신문(信濃毎日新聞)에 입사했다.

그는 지방지에서 일했지만, 스스로 전쟁 현장을 뛰어다녔다. 5년차 기자이던 2002년 3월, 그는 휴가를 얻어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했고, 문화부로 발령났지만 그해 12월에 다시 휴가를 얻어 이라크를 취재했다. 회사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비로 취재를 다녀온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지방지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운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 2003년 1월, 그동안 다니던 지방지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기자가 되었다.

프리랜서가 되자마자, 중동전 현장으로 달려갔다. 2003년 2월 이라크 나자프주, 바그다드, 사마와 등지의 전투 현장을 취재했다. 전쟁 막바지에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정부가 취한 ‘인간 방패 작전’에 다른 저널리스트들과 함께 자진 참가했다. 하지만 인간 방패 작전은 미군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이라크 정부로부터 쓸모없는 기자로 취급당해 초청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후 이라크 군에 체포되었다. 곧이어 풀려났지만 다시 이라크 경찰에 구속되었다. 그는 몇차례 구금되면서도 이라크를 떠나지 않고 취재했다.

2004년 4월 체포된 세 명의 일본인 인질의 소재를 취재하기 위해 팔루자로 향하던 도중에 무장세력에 붙잡혔다. 하지만 곧 석방되고 외국인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2005년 1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지진이 발생하자 아체주 지진현장을 취재하기도 했지만, 곧바로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에서 취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갔다. 이라크 내전이 격화하면서 입국 자체가 어려워지자, 그는 2007년에 기지건설현장이나 군용물자를 제공하는 민간회사에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취재활동을 계속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르포, 전쟁터의 이주 노동자’라는 책자다.

‘아랍의 봄’의 바람이 불어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2012년 그는 그곳으로 가 취재했다.

2009년에 힐링가수 뮤(Myu)와 결혼했다. 아울러 소림사 권법 2단을 획득했다.

2015년 5월 그는 시리아인 브로커와 함께 터키 남부를 거쳐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주에 밀입국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달 21일 마지막 트윗을 날린후 소식이 끊긴채 행방불명되었다. 그를 납치한 단체는 알카에다 계열의 알누스라 전선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범인은 명확치 않다.

해가 바뀌어 2016년 3월 16일 야스다로 보이는 남성의 영상이 발견되었고, 그를 인질로 잡은 단체는 시리아의 무장세력 IS와 대결하고 있는 또다른 무장세력으로 관측되었다.

2016년 5월 29일 야스다라는 이름이 적시된 인물이 “도와주세요. 이것이 마지막 기회입니다”라는 종이판을 들고 있는 이미지가 공개되었다. 올들어 지난 7월 6일 일본 뉴스네트워크는 단독 입수한 영상을 공개하며 “영상 속에 나온 날짜는 2017년 10월 17일이라며, 야스다를 납치, 감금하고 있는 조직이 ‘알카에다의 분파인 무장세력 ’시리아해방기구‘다”라고 보도했다.

 

▲ 2016년 5월에 공개된 야스다 준페이 이미지 /위키피디아

 

그는 납치되기 직전인 2015년 2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어디로 취재를 떠나는지, 어디에 머무는지, 어디로 갈지 등은 안전한 장소로 나올때까지 공개하지 않는다. 나에 관한 정보가 인터넷에 올려지면 나는 불순분자로 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자신의 취재에 대해 “전쟁터에서 간 것은 내 결정에 의한 행동이므로 내 책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야스다의 저서 “누가 나를 인질로 만들었나‘

그는 위험지구에 취재하러 갔다가 일본 정부로부터 수시로 귀국 요청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라아에는 미국, 유럽, 아시아의 기자들이 모두 와 있고, 젊은 여기자부터 대학생 기자에 이르기까지 취재한다. 경험 있는 기자가 취재를 하러 가는데, 경찰이 집에 전화를 걸어 귀국을 종용하는 것은 일본이 세계에서 보기 드믄 겁쟁이 국가임을 드러낼 뿐이다.”

그는 마지막 트위터(2015년 6월 21일)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 취재는 비교적 안전해 블로그나 트위터로 현장 소식을 전해 주었지만, 앞으로 취재 환경이 정말로 취약해 지고 어려워 질 것이라 생각한다. 취재과정을 리얼타임으로 현장보도하는 것도 생각해 보지만, 너무 위험하고 무리일 것 같다.“

그는 「누가 나를 인질로 만들었나: 이라크 전쟁의 환경과 미디어의 허구」 등 3권의 저술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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